영화일기: <해피엔드>-네오 소라
테크노 음악을 좋아하는 두 고등학생 친구는 졸업 이후에도 친구들과 함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음악으로 하나가 된 것 같은 친구들은 그들의 생활도 하나가 되어가고 있음을 안다.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이 우정이 영원할 거라 당연히 여긴다. 그러나 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각자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속 친구는 그저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된다. 그저 완벽한 이유이다. 성격이 잘 맞아서, 취향이 비슷해서, 정치 성향이 비슷해서 라기보다는 같은 학교, 같은 반, 같은 나이라는 이유가 더 이치에 맞는다. 내 세상을 구축해 나가는 청소년 시기에 나의 자아와 너의 자아가 이토록 다르다는 사실은 왜인지 고통스럽다. 무엇이든 함께 할 것이라 예상했건만, 각자 앞에 열린 길이 너무 달라 보인다. 나와 같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실은 나와 다르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의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게 된다. 어른이 되어가는 길의 입구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 위기적 재난 상황에서의 권력가와 소시민/ 표면 위에 드러나는 사회적 약자
코우는 재일한국인이다. 코우는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한국인이라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익숙한 문화는 한국이 아닌 일본이다. 그런데 내 나라는 나를 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재일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존재를 묶어둔다. 일본의 국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은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인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코우의 친구들 중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장 취약한 위치이다. 친구들과 함께 나쁜 짓을 해도 항상 발목이 걸리는 건 코우다. 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 더욱 강화된 보안과 신원확인으로 코우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 속 자신의 위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다.
바다에 돌덩이가 떨어지면 잔잔해 보이는 물결은 하나인 줄 알았던 덩어리의 바닷물에서 여러 개의 작은 물방울이 여기저기 튕겨져 나간다. <해피엔드> 속 일본은 하나의 국가 속 비슷해 보이는 국민들은 대지진이라는 돌덩이가 떨어지는 상황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겪게 되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국경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시대로 진입하는 과도기적 시기에 특히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와 자격이 대두된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 비해 민족성이 두드러지는 일본과 한국에 경우는 아직 다양성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런 취약한 일본의 약점을 보여주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국 역시 그렇다. 한국인이라면 어떤 이목구비에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민족성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기에 외모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관광객이나 유학생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혹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당연하게 배제한다. 한국인의 정의는 무엇이고 그 정의를 짓는 게 과연 의미 있는 행위인가?
시간이 좀 더 흘러 다양한 민족이 한반도에 살게 되면 그때는 우리의 구분 짓기와 차별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싶은 편한 소리를 하게 된다. 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는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당연한 대우를 받으며 어디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건 유토피아적인 상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런 사회가 올 수 있도록 우리의 인식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 학교에 깔린 파놉티 (panopty)의 모순과 우스움
교장의 고가의 차를 수직으로 세워놓은 한밤중의 사건으로 교장의 권위가 실추된다. 이로 인해 교장은 감시형 cctv인 파놉티를 설치하며 교칙 강화에 나선다. 학교는 본디 선생이라는 주체에 의해 학생들은 은근한 감시를 당하는 공간이지만 카메라 설치로 인해 감시 행위를 시각화하며 그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행동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길 요구한다. 그러나 파놉티의 모순으로 인해 선생들의 권력은 더욱 우스워진다.
국가가 위기적 상황일 때는 국가의 감시는 당연한 것일까? 국가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사생활의 일부가 드러나도 당연하다고 여겨야만 할까?
: 어른과 청소년이 왜 다른가? 누가 맞을까? 청소년과 어른은 대립할 수밖에 없는 관계인가.
청소년 시기는 한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단계다. 그런데 또한 그들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이기도 하다. 청소년은 어린이 이후 어른이 되기 전의 과도기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티를 벗어던지고 싶어 하며 앞으로의 어른이 될 모습을 그리며 준비하는 단계이다. 이곳도 저곳에도 속하지 않는 어린이도 어른도 가질 수 없는 강력한 권력이 있다. 패기와 열정, 반항이 그들의 주 무기이다.
이런 무기들의 힘이 조금씩 녹이 슬기 시작하면 사회에 순응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 진입한다. 어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무기들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 또한 없어져야 마땅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지도하기 시작한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지도해야 하는 적당한 선을 넘어버리고 청소년의 무기를 뺏어버린다.
<해피엔드> 속 후미는 그녀의 무기를 어른들로부터 지키며 그녀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 사회 속 어른의 표상인 교장과 대립하는 장면의 그녀의 용맹함과 패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교장이 권하는 도시락을 거부한 채 시위를 하는 모습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기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후미의 움직임에 함께 반응하는 코우 또한 그에게 숨겨진 무기들이 빛을 발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의 이유 없는 반항이나 패기로 보지 않고 이들이 가진 아름다운 힘이라고 봐주면 어떨까. 경험이 부족하다고 어린 생각이라고 제외되는 것이 맞을까? 언젠간 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야 할 주체들이라는 것이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