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언어와 언어의 경계,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by 웅차

안녕하세요. 일주일 동안 폭우로 인해 여러 곳곳에서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무탈하게 잘 계셨는지요. 비가 언제까지 올진 모르지만 더 이상 별일 없이 짧게 왔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소통을 주제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가끔 같은 언어로 대화해도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는 상황에서 단어들은 외계어 같기도 외국어 같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얘기할 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계속 대화가 통하는 그런 경험은 정말 신기합니다. 동일한 언어가 소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소통의 필수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저는 언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어는 국가만의 고유의 문화와 역사, 민족성(사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등 세계가 담긴 체계이기에 같은 언어를 사용해야 부드럽게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서로 언어를 잘 모르는 커플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한 적이 있어요. 영어로 이야기하더라도 서로의 모국어가 아니기에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고, 내 감정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감정의 깊이에 대해 의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언어가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진심보다 언어를 높게 평가하던 사람이었던 거죠. 대화 속 언어에만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가끔은 언어가 담고 있는 세계보다 그 사람의 세계가 더욱 넓고 위대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가후쿠는 아내와 사별한 고통을 그대로 안고 계속 일을 하는 주인공입니다. 그는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이지만, 아내를 잃고 나서는 배우보다 연출 일에만 몰두합니다. 가후쿠의 연출법은 다소 특이합니다. 배우로 연기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의 디디와 고고의 언어를 다르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대사를 이어나갑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부드럽게 연결되는 대사들은 신기합니다.



가후쿠가 연출을 맡은 <바냐 아저씨>에서도 등장인물을 아시아의 전역의 배우를 대상으로 캐스팅을 하죠.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심지어 수어를 사용하는 배우까지 캐스팅이 됩니다. 배우들은 리딩연습을 하면서 서로 모르는 언어로 대사를 하는 부분에서 지루함을 느낀다고 말하죠. 하지만 배우들은 이 희극의 스토리를 전부 숙지하고 있고, 점점 대사를 맞춰가면서 왠지 모르게 언어를 모르지만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 감정을 느끼며 연기에 진심으로 임하게 됩니다.




<바냐 아저씨>에 캐스팅된 배우 중 수어를 하는 한국인 유나는 말을 하지 못해도 보고, 듣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냐 아저씨> 글이 정말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고 하죠. 수어 하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극이 더욱 다채로운 소통에 대해서 그리고 진정 소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가 소통을 하는 것은 말로써 완성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감정인 것 같아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감정을 그저 형용하는 수단으로써 말이 그 역할을 하는 것이죠. 언어는 실로 장벽처럼 보이지만 소통에 있어서 커다란 장벽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내가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전부가 아닌 우리가 보고 듣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느 쪽에 좀 더 귀를 기울이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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