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희랍어 시간>
https://youtu.be/CGK6jZPMEcA?si=Jdbd9gAyp4JGxe2_
한강의 <희랍어 시간> 소설에서는 보는 것을 잃어버린 남자와, 말이 멈추고 침묵 속에 사는 여자가 소통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시각을 점점 잃어가는 사람과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가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상상하지도 못한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감각을 잃어버린 두 남녀는 소통할 수 있을까요?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해진 마음에 읽은 <희랍어 시간>을 읽고 있으니 시큼한 땀냄새와 섞인 사과 비누향 그리고 축축한 살들이 느껴지고, 또 어디선가 들려오는 차의 경적소리, 밤에 우는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종종 침묵하십니까?
가끔 너무 많은 소리와 정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누구의 얘기들. 과한 정보 그리고 지나친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기도, 듣기도 하며 살고 있는 그런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느낄 때일수록, 침묵은 채반 역할을 합니다. 침묵은 단지 말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물체를 보아도 현상을 보아도 이를 언어로 변환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즉 현상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바로 침묵입니다.
우리는 쉽게 판단합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내가 나를 볼 때도 쉽게 판단해버리곤 하고 하나의 사물을 보아도 어느 각도에서든 내 잣대로 평가가 들어갑니다. 하나의 경향성을 띤 형용어 들은 마음속 이곳저곳을 가득 채워서 내 마음은 수많은 형용사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단지 말을 하지 않은 이 마음은 침묵이 아닐 것입니다.
소통은 서로의 감정과 의견을 주고받는 언어적인 행위이지만, 종종 침묵으로써 완성되는 소통도 존재합니다. 눈빛으로 대화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전 가끔 겪는 것 같아요.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혹은 상대의 말투와 숨소리를 들어주는 것이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쌍방의 소통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언어는 인간과 닮았습니다. 언어도 곧 인간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죠. 때문에 취약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는 내가 가는 지역마다 달라질 수 있는 취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보다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감각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개인마다 감각하는 것이 다르기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서로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단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보고, 듣고, 느껴지는 감각들은 언어보다 객관적이곤 합니다.
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이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희랍어 시간>, p.55
침묵은 타인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여백이며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상대가 말하기 전이나 혹은 말하지 못하더라도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행위입니다. 말은 없지만, 가장 능동적인 경청이자 포용의 형태로서 마음을 전해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