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남자가 관계의 끝에서 한 일

토니 케이 , <디태치먼트>

by 웅차

소통으로 다뤄본 한 달의 마지막 페이지가 되는 글입니다.


한 달 동안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하면서 지내다 보니 저는 어느새 소통에 통달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습니다. 저의 관계에 있어서는 완벽한 소통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요. 하면 할수록 곡해되고 이기적인 마음만이 생기는 것이 소통은 아닐까. 완벽한 소통이란 유토피아인 것인가 생각하면서 제가 너무 이상적인 세계에서의 모습만 바라보는 꿈 꾸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항상 중요한 순간이 되는 시점에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일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미운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하면 누군과와의 관계에서 체면치레할 일도 남의 일에 큰 관심을 안 두어도 되는 점 등등 의외로 외로운 삶도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곪게 되는 문제는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더군요. 그건 내 옆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치료가 되었더라고요. 내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해결법을 얻기도 하고, 혼자서 찾기 어려웠던 순간의 행복함도 경험하면서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은 혼자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건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진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소통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관계 맺기가 어려운 사람은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쉽사리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하나에 이러한 깊이를 느끼지 못하고 내 스스로 격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다."라는 말을 한 알베르 카뮈의 말을 시작으로 한 영화 <디태치먼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카뮈의 말 한마디로 관계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삶이 응축되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디태치먼트>는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임시 교사가 학교에서 겪는 일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영화 제목인 디태치먼트Detachment 라는 단어는 무관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주인공 헨리를 묘사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단어의 뜻을 검색하던 중 심리학적 용어로써의 Detachment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그 의미는 '회피; 정서적 연결에서의 회피'라고 합니다. 저는 오히려 심리학적 용어로 해석한 것이 주인공 헨리를 묘사하는 데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리카를 길거리 생활에서 구해준 일, 모든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헨리는 무관심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에 개입하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나서서 하죠. 항상 관계에 끝에서 관계가 깊어지는 순간에 회피를 하는 헨리에게 '(심리학적 용어) 회피'가 더욱 잘 어울립니다.




새로 맡게 된 반의 학생들과는 깊은 관계가 되지 말자는 것이 그의 철칙이고, 안정적인 정규직 교사보다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니는 임시직 교사를 하고 있는 이유는 헨리의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한 회피형 관계 맺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절로 회복되는 건 아니듯, 헨리는 자기 안에 7살 어린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은 욕구는 자신이 아닌 다른 아이들에게 향하죠. 그가 문제아가 가득한 학교에서 임시 교사를 하는 이유도, 길 위 에리카를 구해준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그리고 에리카에게 보여지는 헨리는 자상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어른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학교 밖에서의 헨리는 불안정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어릴 적부터 시작된 상처는 여전히 그에게 상처로 존재합니다. 이런 헨리의 상처를 모르는 학생 중 메레디스는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들어달라 요청하지만 단칼에 거부합니다. 비정상적 가정에서 자란 탓에 깊은 관계를 거부하는 회피형 애착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 메레디스를 거부했을 때도 에리카의 지속적 관심과 사랑을 거부했을 때도 드러납니다.



자기의 상처가 너무 벅차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궁금해하지도 깊게 알고 싶지도 않은 상태의 헨리를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다른 사람마저 고립시킵니다. 그가 가진 회피형 애착의 문제도 있겠지만 아마 '상처 투성이의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상처를 돌보겠는가'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과 소통을 잘했지만 개인의 삶에 깊게 관여하는 문제는 다르기에 겁이 났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소통은 존재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마음을 먹게 된 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으며 완벽한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완벽하지 않고 문제가 많다는 것은 남들도 그렇다는 의미이죠. 서로의 상처를 돌볼 만큼 내 상처가 깊은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비슷한 모양의 상처가 있다는 것은 서로 소통하며 나아질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영화의 잊히지 않는 마지막 장면, 에리카와 헨리가 껴안는 장면은 상처와 상처가 만나 서로를 치유하며 회복할 수 있다는 일말의 작은 희망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무력하게 흘러가는 영화의 분위기에서 포옹 장면은 그럼에도 희망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해 주어 마음이 더욱 뭉클해지는 것 같습니다.


결국, 관계에서 오는 완벽한 소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남과 모남이 서로 만나 치유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준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남들과 소통하는 법을 최선을 다해 배워야 함을 말해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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