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바움백, <결혼 이야기>
가고 싶었던 학교에 들어가기 전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일들은 딱히 일어나지 않았다. 벚꽃이 날리는 캠퍼스 거리를 애인과 함께 걷는 것, 수업 중 모르는 개념을 손을 들고 교수님께 질의를 하는 모습, 학교에서 동기들과 밤을 새우며 과제를 하고 술을 먹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만 있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술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았었고, 술을 먹어도 학교를 벗어나서 먹는 게 익숙해졌다. 그러다 날이 좋은 어느 날, 항상 같이 다니는 동기들과 학교에서 와인을 먹게 되었다. 먹게 된 이유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이 와인을 반드시 처리해야 했었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학교 사물함에 있는 와인을 당장 처리해야 했는데 버릴 수도 없고 기왕 마시자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학교의 호수 벤치에 앉아 마시자고 했지만 오프너도 업었고, 와인을 따라 마실 수 있는 컵도 없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다이소에서 급하게 산 오프너 그리고 정수기 물을 따라 마시는 일회용 종이컵을 구해다 마셨다. 그래도 낭만적인 일이라고 한다면 포장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날은 약간 땀이 나는 습한 날씨였고, 호수에는 벌레가 굉장히 많아서 모기에 물려 짜증이 났었다. 그리고 이번 학기부터 시작되는 논문 때문에 이리저리 신경 쓸게 많았다. 그런 와중에 와인은 시원하지 않아 알코올 맛이 많이 느껴졌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낭만적이라거나 좋지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냥 나는 살아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날들 중 하루도 안 되는 고작 몇 시간 정도였으며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기분, 환경, 걱정, 고민 등 나를 지배하고 있던 감정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았다.
인생에서 나의 환경이 굵직하게 바뀌는 사건이 몇 개 있다. 그 사건을 겪기 전에는 지금의 시궁창 같은 혹은 질려버린 내 삶이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말도 안 되는 은근한 기대를 하게 되는 사건들 중 결혼은 하나에서 둘이 되는 중대한 일이다. 완전히 내 삶의 모습과 형태가 바뀌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괜찮은 미래를 기대하게 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난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랬다. 왠지 내가 겪어보지 않은 로맨틱한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버렸다.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오히려 ‘이혼 이야기’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찰리와 니콜 부부가 서로가 생각하는 장점을 읊으며 시작하는 영화의 오프닝은 예쁜 결혼 생활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찰리와 니콜은 파경에 이르렀고, 합의를 위한 부부 상담에서 영화는 다시 시작한다.
뉴욕 기반의 삶을 원하는 찰리, LA의 삶을 원하는 니콜은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법정에까지 가며 이혼 소송 과정을 밟는다. 그 과정은 추했다. 변호사는 대리인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부부의 이혼은 그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고 승소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을 기반으로 작은 일이 크게 부풀려지기도 한다. 합의를 위해서라도 얼굴이 붉어지는 일들을 참아내야만 한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의견 합치가 안된다는 이유는 이혼에 중요한 논지가 아니다. 그들의 커리어와 아이의 양육권, 그리고 도시(뉴욕이냐 LA냐)의 문제를 떼어놓고는 결정에 도달할 수 없는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 마음에 없는 말로 상처를 주고 후회하기도 한다.
찰리는 니콜이 왜 이혼을 원하는지 모른다. 니콜은 남편에 이름에 가져지지 않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펼치기 위해 LA에서 살아보고자 결혼 생활 중 몇 번 언급했지만 찰리는 이를 묵인했다. 니콜이 이게 바로 이혼하고 싶은 이유라고 말하자 찰리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다.
찰리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였을까. 자신의 삶이 중요했던 찰리의 삶에 니콜이 들어왔고, 자신의 모든 일에 니콜이 함께하는 것. 찰리는 그냥 자기 삶을 살아갔다. 니콜과 아들 헨리의 삶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자신만의 결혼 환상에서 살았던 것이다. 헨리와 니콜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이혼 과정에 겪으면서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이 중요했다. 결혼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모른다. 단지 자신의 삶에 누군가가 추가된 것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니콜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했는지, 그녀에게 LA가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무조건적으로 뉴욕을 기반의 삶과 아이의 양육권을 가지고 오려고 애쓴다.
결혼은 결국 삶 그 자체가 된다. 내 삶과 결혼이 별개 아님을 이혼하는 과정을 알게 된다. ‘그저 살아가는 것 (Being alive)’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찰리는 마지막에 중요한 사실을 얼핏 알게 된다. 찰리는 자신의 삶과 결혼 생활이 별개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별의 과정마저 결혼의 일부이다.
모든 것은 내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모든지 환상 같은 기대로 설레게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