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이사> 렌이 가르쳐준 성장의 의례

소마이 신지, <이사>

by 웅차

한 중년 여배우가 어디선가 “인생은 기분관리다!”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인생과 기분이 무슨 관계인가 싶었다. 처음엔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유난히 모든 것이 잘 안풀리던 어떤 날, 그 말은 나에게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다시 한번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아주 사소한 건 바로 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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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없다. 물론 인생은 내 선택의 연속이긴 하지만 그 선택에 수반된 책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과 관계 속에서 실의에 빠져있기 보다 능동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인생을 살면서 이로운 것이라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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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의 주인공 ‘렌’은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능동적으로 상황을 바꾸려하는 꽤나 성숙한 아이다. 같은 여자 아이 또래를 화자로 하는 영화 샬롯 웰스의 <애프터썬>의 ‘소피’가 아빠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수동적인 태도였다면, <이사>의 렌은 스스로 상황을 바꿔보려는 능동성을 보여준다. 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황을 바꾸려 한다.



렌은 엄마 아빠가 따로 살기로 결정한 후 이런 상황이 낯설기만 하다. 엄마는 이상해졌고, 아빠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학교 친구들이 알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엄마 아빠가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항상 가던 가족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또, 친구의 조언을 따라 반항하는 시위도 도전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상황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럴때마다 그녀가 선택한 행위는 ‘달리기’였다.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렌은 달렸다. 달리기는 그녀가 선택한 유일한 저항이자 성장의 방식이었다. 렌은 어른들의 세계에 순응해야 할 것 같은 순간마다 달리기를 택했다. 그녀는 뛰면서 아마 다시는 이전의 셋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달리는 육체적 행위에서 어른이 되는 정신적인 변화를 선택하게 된다. 자신이 얼른 커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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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이 어른이 되는 과정은 마츠리를 시작으로 렌의 내면적 의식으로 이어진다. 렌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짚단이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며 자신만의 의식을 시작한다. 일본 전통 마츠리에서 불은 정화와 재생, 이계와의 소통을 상징한다. 짚을 태우는 행위는 지난 날의 부정을 태워 보내고 새 출발을 기원하는 의례다. 해가 저문 뒤 하루의 끝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곧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공동체가 함께하는 불의식과,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렌의 내면적 성장은 서로 겹쳐지며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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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렌은 숲 속에서 넘어지고, 잠시 잠에 빠지기도 하는 여러 시련을 겪는다. 마치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거치게 된다. 숲을 지나고 렌은 결국 바닷가에 도착하고 지평선 너머의 배가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다. 그 배는 렌의 과거다.

세 가족이 함께 떠났던 일상의 여행 장면이 스쳐 지나가지만, 결국 불에 타고 만다. 렌은 자신의 지난 날들을 또 한번 보내고 다시 돌아올 자신의 모습을 자축한다. “축하합니다! (おめでとう)” 를 계속해서 외치며 스스로의 성장의 의례를 축하한다. 그런 아이의 모습은 왠지 짠하기도, 성장을 한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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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나 역시 기분을 관리하며 살아가는 동안, 그것이 곧 내가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방식임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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