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는 사랑이 찾아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누도 잇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by 웅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는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이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모든 것을 함축하는 깔끔한 한마디로 나는 츠네오가 도망쳐온 무언가를 파헤쳐 보고 싶었다.



츠네오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 츠네오에 감정을 이입해서 보게 되며 마지막 우는 장면에 말할 수 없는 욱신함이 남는다. 조제는 츠네오와 헤어졌음에도 오히려 머리를 정갈하게 묶고 늘 그래왔듯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스툴에서 다이빙을 한다.


츠네오와 조제와의 담담한 이별, 츠네오의 울음은 영화가 끝나고 난 후 먹먹한 느낌을 준다. 저마다의 사정과 상황이 이해되기에 그들의 담백한 이별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새드엔딩으로 끝난 사랑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이는 츠네오의 감정에 이입했기에 더 슬플 것이다. 하지만 조제에게 있어서 이 관계는 또 다른 출발이 된 셈이다. 그러니 반드시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 조제의 시점으로 츠네오는 무엇이었을까?




1. 츠네오를 만나기 전: 할머니와 함께 생활한 시기

- 확인되지 않은 생명체(unidentified object) 존재 같은 조제


조제는 ‘제정신이 아닌 할머니가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르는 유모차를 끌며 새벽마다 돌아다닌다’는 소문에 의한 존재였다. 조제의 할머니는 불구인 조제가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숨죽여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런 조제에게 유일한 낙은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에 할머니가 끌어주는 유모차를 타고 산책하는 것과 할머니가 주어다 주는 헌책을 읽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이런 활동들은 어쩌면 조제의 취미생활이라 할 수 있는데,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욕구의 의지를 무시하지 않고 알아차리고 실행하고 있다는 점은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그녀의 매력이다. 자신의 장애를 숨겨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라는 영역은 스스로 무시하지 않는다. 츠네오도 이런 그녀의 매력을 느꼈던 것이었다.


자신의 욕구를 인지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녀라 할지라도 조제에게는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불가능이 존재했다. 자신의 바운더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그녀의 집에서조차 외부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게 되면 다다미 방의 옷장에 들어가 숨어버린다. 그 공간은 그녀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가장 작은 숨통인 셈이다. 집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할머니가 다닐 수 있는 집 근처에 불과하고 심지어 작은 유모차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자신을 스스로 물고기에 비유하며 츠네오를 만나기 전에는 깊은 심해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이름을 따올 만큼 좋아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속에서는 사랑과 그리고 영원은 없으며 언젠가는 식게 될 사랑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조제는 아마도 사강의 소설 속 여주인공 조제와 같이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2. 츠네오를 만나고: 츠네오와의 동거

- 뭍으로 나온 조제


조제는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누가 다가와도 끝까지 밀어내지 않고 자신의 욕구에 따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 둘 실행에 옮기기에 완벽한 환경이 되었다. 츠네오는 심해 속에만 있었던 조제를 뭍으로 꺼내준 존재이다. 책으로만 봤던 무서운 호랑이를 직접 마주하며 공포를 극복하기도 했고, 바다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봤다. 츠네오는 조제에게 새로운 다리가 되어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

츠네오가 조제에게 지쳐할 때에도 조제는 이미 끝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그 순간에 후회 없는 선택을 한다.




3. 츠네오와 이별

- 다시 심해로 들어갈 수 없는 조제


츠네오에게는 점점 조제가 현실이고, 책임감이라고 느끼게 되면서 도망쳤다. 조제는 츠네오와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다. 츠네오를 통해서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츠네오와의 이별 이후에도 자신은 다시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츠네오에게는 조제와의 이별이 가슴 먹먹하고 도망치고 싶은 존재일지 모르지만, 조제는 이제 세상 밖에 나왔고 이전과 비슷해 보이지만 확실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그저 누군가를 만나고 넓어진 세계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성장한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영화는 많지만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매력적인 영화이다. 조제라는 인물을 통해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린 사랑이 당연하고, 그것이 끝은 아님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너무나 당연한 사랑임을, 그 사랑은 우리 모두 그렇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언젠가 그와의 사랑이 끝났을 때,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 조제처럼 머리를 정갈히 묶고 밥을 먹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축하합니다!-<이사> 렌이 가르쳐준 성장의 의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