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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인간

(살면서 발견한 것들 2)


살면서 발견한다. 사람이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는 것. 사람마다 고유한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 부부 간이건, 부모 자식 간이건, 친구 간이건, 직장 동료 간이건 거의 예외 없이 고유한 유형의 문제를 반복하더라는 것. 그때마다 적잖이 피를 흘리며 아파하고 후회하면서도 상처가 아물고 나면 또다시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더라는 것. 도박에 걸려 넘어진 사람은 또다시 도박에 걸려 넘어지고,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아무리 마음을 다스려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워도 같은 상황에 부닥치면 또다시 감정선이 뜨거워지고, 술을 마시기만 하면 개가 되는 사람은 아무리 다짐을 해도 술 먹으면 또다시 개가 되고, 어떤 말에 상처받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말에 또다시 상처받더라는 것.     

 

여러분의 삶도 가만히 돌아보라. 직장 동료 A와 자주 다투는 게 무엇 때문인지. 무엇 때문에 부부간에 감정선이 충돌하는지. 무엇 때문에 어제 그토록 화가 났는지. 놀랍게도 항상 같은 상황, 같은 문제로 인해 그런다는 게 보일 것이다. 정치나 종교도 다르지 않다. 

잘 아는 대로 한국 정치는 고질적으로 패거리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졌다. 오래 전부터 온 국민이 패거리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고, 패거리 정치에 신물났다고들 손사래를 치지만 아직도 여의도에서는 계파 정치, 패거리 정치가 시퍼렇게 살아 꿈틀대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다. 믿음이라고 하는 확신의 덫에 걸려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혀 살고, 하나님의 뜻을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자기 정당화를 일삼으며 산다. 중세에도 그 걸림돌, 지금도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다.      


더 심하게는, 이것이 걸림돌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그 걸림돌을 치우지 않는 자들이 있다. 아마도 살면서 이런 사람 한두 번씩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것이 관계를 가로막는 걸림돌인 줄 빤히 알면서도 막무가내 그냥 놓아두라고, 자기는 치울 생각이 없다고, 자기는 치울 생각이 없으니 불편하면 당신이 피해 가라고 똥고집을 부리는 사람. 어떤 방법으로도 함께 문제를 풀어갈 수 없을 정도로 완고한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완고함으로 똘똘 뭉친 사람. 함께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는 사람.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당히 지혜롭고 열린 사람이라 해도 깊이 들여다보면 결정적인 똥고집이 하나씩은 있다.      

왜 이럴까? 왜 고집스럽게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놀랍게도 사람이 영특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버금가는 빛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영특한 빛의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경험과 앎을 절대화하려는 경향성이 있는 것이고, 그 경향성으로 인해 쉬 자기 안에 갇히는 것이고, 자기 안에 갇히기 때문에 어리석음에 뿌리내린 완고함과 완고함에 갇힌 어리석음의 포로가 되어 그러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결정적인 똥고집이 하나씩은 있다. 완고한 어리석음과 어리석은 완고함에 사로잡힌 부분이 하나씩은 있다.    

  

결국 영특한 빛의 존재인 사람이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첫째로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안다 해도 고칠 의향이 없기 때문이며, 셋째로 변화의 어려움 때문이다. 옳다. 사람은 영특한 빛의 존재인데도 의외로 자기를 모른다. 의외로 변화에 게으르다. 그리고 사람이 변화하기란 산을 옮기는 것 만큼이나 어렵기 때문에 변화를 열망한다 해도 쉬 변화에 이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문다.  

    

솔직히 반추와 교정의 길을 간다는 것, 생각보다 어렵다. 반추와 교정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내적인 싸움을 치열하게 해야 하고, 모든 촉수가 깨어 있어야 한다. 오랜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 더욱이 외부의 적은 물리치기 쉬워도 내부의 적을 물리치기란 매우 어렵다.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다. 때문에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반추와 교정이라는 힘겨운 과정(수행)을 생략한 채 살려 한다. 그저 적당히 외부의 적과 싸우면서 사회적인 자리를 확보하는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어떻게든 자기 방식을 고수하려 애쓸 뿐 온전하게 변화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로서 당당하게 사는 길이 아닌데도 그렇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 양 포즈를 취하며 용감하게 산다.    

  

참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며 산다. 그때마다 적잖이 피를 흘리며 아파하고 후회하면서도 상처가 아물고 나면 또다시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산다.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지적하는 나 또한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살아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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