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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 삶 · 일, 그 미묘함에 대하여

(은퇴 이후의 삶, 6번째 이야기)

  나는 오래전부터 삶이 가장 소중하다고 주창해온 삶주의자다. 삶이 성공보다 중요하고, 돈보다 중요하고, 신앙보다 중요하고, 명예보다 중요하고, 직업보다 중요하고, 이데올로기보다 중요하고, 어떤 성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삶에 집중하려 노력해온 삶주의자다. 그런데 퇴직 이후의 삶을 고민하면서 가장 무겁게 다가온 것은 일이었다. 인간에게 있어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사실이 다른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옳다. 인간에게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왜냐면 인간은 먹고사는 것으로 충분한 존재가 아니니까. 인간은 먹고사는 것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어 하니까. 즉 세상 모든 것의 이치를 이해하고 싶어 하고, 뭔가 결핍과 필요가 보이면 기어이 그것을 채우고 싶어 하고, 자기를 비롯해 우주 만물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묻고 찾으려 하고, 자기 삶을 아름답게 경영하고 싶어 하고, 뭔가 자기만의 기여를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니까. 그리고 모든 일은 바로 이런 인간의 욕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니까.    

  

  만약 인간에게 먹고사는 것 이상의 욕망이 없다면 어떨 것 같은가? 과연 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당연히 없을 것이다. 일이라고 해봤자 고작 생존에 필요한 단순 노동이면 충분할 것이다. 호랑이처럼. 코끼리처럼.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에게는 다양한 욕망, 끝없는 욕망이 있다. 그리고 이 욕망은 욕망이 실현될 때까지 인간을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끝없이 도전하게 하고, 탐구하게 하고, 일하게 한다. 배와 비행기를 만들게 하고, 컴퓨터를 만들게 하고, 망원경을 만들게 하고, 사회를 조성하게 하고, 도시를 건설하게 하고, 국가를 이루게 하고, 우주의 비밀을 탐구하게 한다. 진실로 그렇다. 모든 일은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이고, 모든 욕망은 결국 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일하는 것이다. 아니, 일하지 않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퇴직 이후의 삶을 두고 고민하면 할수록 이 사실이 도드라졌다. 인간은 일없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로 무겁게 다가왔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일이 없으면 삶 전체가 타락한다”고 말한 것도 깊이 공감됐다. 

  그런데 이 사실이 도드라짐과 동시에 의문 하나가 ‘나 여기 있소’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라는 의문. 사실 쉽지 않은 의문이다. 그렇지만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중에도 ‘살면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건 백 퍼센트 장담해도 된다고 보는데 정녕 그럴 것이다.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일 이상의 존재다인간은 단지 먹고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도, 단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도 아닌 일 이상의 존재다.      


  달리 말해보자.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로서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동시에 인간은 일 이상의 존재로서 일을 삶의 목적이나 목표로 삼고 살 수도 없다. 인간과 일 사이에는 이렇듯 미묘한 긴장이 있다. 인간의 삶이 꽃피기 위해서는 일이 없어도 안 되고 일이 전부가 돼서도 안 되는 긴장, 일을 놓아서도 안 되고 일에 목매달아서도 안 되는 미묘한 긴장이 있다. 더욱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는 것이 삶이고,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요인들이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다 보니, 인간과 삶과 일 간에 복잡한 함수관계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일하는 사람과 일 사이에도 궁합이 맞아야 한다. 아무리 멋진 일이라 해도 일하는 사람과 궁합이 맞지 않으면 무거운 짐이 되거나 무서운 형벌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매우 까다롭고 예민해서 일이 없으면 일에 굶주려 죽고, 일이 많으면 일에 짓눌려 죽는다. 그러니 욕망하는 존재인 인간이 삶을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겹겠는가. 일하면서 일에 짓밟히지 않기가, 일하면서 행복을 노래하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정말 한없이 복잡미묘하고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 인간 · 삶 · 일 간의 함수관계다.      


  일에 양면이 있는 것도 이런 함수관계 때문이다. 인간과 삶과 일이 복잡미묘한 함수관계에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밝은 면(긍정적인 면)과 어두운 면(부정적인 면)이 공존하는 것이다. 변호사를 생각해보자. 변호사는 분명히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업군에 속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양면이 있다. 즉 변호하는 일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거나 잘하는 일일 경우, 일의 밝은 면이 드러난다. 반면에 변호하는 일이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거나 잘못하는 일일 경우, 일의 어두운 면이 드러난다. 전자의 경우, 변호사로서 일하는 것이 즐겁고, 일을 통해 자아가 확장되고 존재감이 채워지는 행복감에 젖는다. 반면에 후자의 경우, 변호사로서 일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일을 통해 자아가 확장되거나 존재감이 채워지는 경험은커녕 일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고 존재가 위축되는 자기소외를 경험한다.      


  옳다. 일은 단지 일로 끝나지 않는다. 일은 놀랍게도 인간과 삶을 UP 시키기도 하고, 인간과 삶을 DOWN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과 삶을 UP 시키는 일은 보통 일과 놀이, 일과 삶, 일과 쉼, 일과 창조, 일과 예술, 일과 배움이 조화롭게 통합돼 있다. 반면 인간과 삶을 DOWN 시키는 일은 보통 일과 놀이, 일과 삶, 일과 쉼, 일과 창조, 일과 예술, 일과 배움이 날카롭게 대립해 있다.    

  

  인간과 삶을 UP 시키는 일의 경우, 일의 주체가 대개 자기다. 그래서 자기에게 맞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누군가의 결핍과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한다.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동시에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고 일을 상대화하며, 일이 삶을 위협하지 않도록 조정한다. 또 전인이 일에 참여하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일하고, 능동적으로 일하고, 기쁘게 일한다. 일을 통해 삶이 풍성해지는 복을 누린다. 

  반면 인간과 삶을 DOWN 시키는 일의 경우, 일의 주체가 대개 자기가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일을 찾는 게 아니라 고용주가 요구하는 일, 자기에게 부과된 일,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한다. 일과 삶을 조정하지 못한 채 일에 끌려 살고 묶여 산다.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님을 망각한 채 일 중독자로 사는 경우도 많고, 열심히 일하는데도 이상하게 열심히 일할수록 삶이 위축되고 소외된다. 전인이 아닌 일부분만 일에 참여하기 때문에 일의 진정한 주체가 되지 못한 채 그저 습관적으로 일하고, 피동적으로 일하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일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인간과 삶을 UP 시키는 일의 경우, 일은 단지 일이 아니다. 단지 돈벌이가 아니다. 단지 생존 수단이 아니다. 일은 인간과 삶을 풍성케 하는 일상의 예술이 되고, 아름다운 봉사가 되고, 기막힌 창조가 되고, 깊은 배움이 되고, 삶이 된다. 한 마디로 일과 나 사이에 틈이 없다. 소외가 없다. 

  반면 인간과 삶을 DOWN 시키는 일의 경우, 일은 인간과 삶을 풍성케 하는 일상의 예술이나 아름다운 봉사나 기막힌 창조가 되지 못한다. 일을 통해 깊은 배움을 얻지도 못하고 삶을 경험하지도 못한다. 일은 오직 일일 뿐이고, 오직 돈벌이일 뿐이고, 오직 생존 수단일 뿐이지 일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한 마디로 일과 나 사이에 거대한 틈이 있다. 소외가 있다.    

  

  흔히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때 직업이라는 잣대로 이러쿵저러쿵 평가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생이란 나 · 삶 · 일 · 사회라는 변수들이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는 고차원 함수방정식이다. 나 · 삶 · 일 · 사회라는 변수들이 어떻게 얽히고설키느냐에 따라 다종다양한 모습으로 다채롭게 펼쳐지는 고차원 함수방정식이다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말하는 것도 나 · 삶 · 일 · 사회라는 변수들이 워낙 복잡미묘하게 얽혀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인생의 한복판에서 묻는다. 어떻게 하면 인간과 삶을 UP 시키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어떻게 해야 일을 통해 인간과 삶을 UP 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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