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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ossible Dream

살면서 발견한 것들(1)



나는 성장하면서 그리 강렬한 꿈을 가져본 적이 없다. 엔지니어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 채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고, 한참 영화에 빠졌을 땐 영화감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을 뿐.      

그러던 나에게 꿈이 생긴 건 의문의 화살이 심장에 꽂히고서였다. 19살 때였다. 거리의 사람들 사이를 헤쳐가며 걷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엉뚱한 의문이 들었다.                                                           ‘저 많고 많은 사람이 다 참사람일까? 아무래도 그러지는 않은 것 같은데? 수많은 세월을 거쳐오면서 이모저모 많이 변형되고 퇴색했을 것 같은데? 부모에 부모를 거슬러 계속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 최초의 사람이 나올 텐데 그 최초의 사람은 분명 지금의 사람들하고는 다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 최초의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의문. 

의문은 의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주 건방지게도 ‘나는 그 최초의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 많은 사람들 말고 맨 처음 인간, 퇴색되지 않은 최초의 인간이 되고 싶다.’라는 데까지 생각이 자가발전했다. 이 생각이 얼마나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인 줄도 모른 채 나와 상관없이. 어떤 검토도 없이.   

   

21살 때도 비슷한 뇌피셜이 벌어졌다. 햇빛 찬란한 봄날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벌렁 누워 무심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20세기 말의 비참한 세계 현실로 생각이 옮겨가더니 어느 순간 생각지 못한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20세기 말의 세상이 이처럼 헝클어지고 망가지고 비참해진 것은 위대한 영웅이 없어서가 아니다. 참인간이 없어서 그런 거다. 참된 인간이 있다면 이 세상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은 아닐 텐데 참된 인간이 없어서 세상이 이토록 엉망진창이 된 거다.’라는 생각. 그리고 또 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지금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10명의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참된 인간이다. 그러니 나는 이 세상을 위해 참인간이 되자.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참인간이 되자.’라는 데까지 단숨에 나아갔다. 이번에도 역시 이 생각이 얼마나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인 줄도 모른 채 나와 상관없이. 어떤 검토도 없이.   

   

이 두 사건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사건이다. 내 안에서, 내 생각과 마음속에서 일어난 지극히 주관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이 있은 후부터 내 꿈은 오직 ‘인간이 되는 것’이 돼버렸다. 물론 목사로서 때때로 큰 목회를 하고 싶은 마음, 유명한 설교자가 되고 싶은 마음,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잠시 출렁이다가 사라졌고, 내 마음과 머리와 가슴을 줄기차게 사로잡은 것은 항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내 나이 30이 되어서도. 40이 되어서도. 50이 되어서도. 60이 되어서도. 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의 궁극 포인트는 순진하게도 항상 인간이었고 오직 인간이었다. 참인간이 되는 것, 오직 이것만이 나의 유일무이한 꿈이었다.   

   

물론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온갖 발버둥을 다 했는데도 나는 도무지 인간이 되지 못했고, 당연히 인간으로 살지 못했다. 솔직히 젊어서는 40이 되면 인간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불혹의 나이가 됐는데도 여전히 나는 내가 꿈꾸는 인간이 아니었다. 너무나 허망했다. 누구도 나를 책망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나에게 체면이 서지 않아 겸연쩍고 송구스러웠다. 하지만 그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목표 설정을 한참 뒤로 미뤘다. 20년 후 나이 60이 되면 인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웬걸!! 어찌어찌하다 보니 순식간에 60이 되어버렸고, 60에도 난 여전히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이전보다 더 갈 길이 멀어 보이고, 인간이 되는 일의 무게가 점점 커 보일 뿐.      


사실 열심히 한다고 했다. 삶 전체를 통해 공부했고, 내 모든 공부의 과녁은 항상 인간과 인간의 삶이었다. 프로 기사들이 바둑을 두고 나면 천천히 복기하며 패인을 분석하듯이 나도 내 일상의 언행심사를 돌아보며 무엇이 부족했는지 어디에서 넘어졌는지를 반추하며 변화하려 했다. 심리 상담 전문가나 정신과 의사들이나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쓴 책이나 소설 등을 읽으며 인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인간이 되는 일에 실패했다. 하는 행동마다 구멍이 있었고, 하는 말마다 흠투성이었다.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아프고 절망스러운 것들뿐이었다. 참 슬펐다. ‘아무래도 나는 태어나기를, 부족한 인간,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인간으로 태어난 것 같다’는 한탄이 나오기도 했다.      


꿈은 간절하고 또렷했는데도, 간절하고 또렷한 만큼 내 존재와 삶 전체를 투신해 노력했는데도, 그것도 10년 20년이 아니고 자그마치 40년 넘게 씨름했는데도 나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 인간이라기에는 한참이나 미달한 쓰레기더미였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 누구도 감히 ‘나는 인간이 됐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 되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 


실제로 살면서 보니 나뿐 아니라 다양한 전기와 자서전에 나오는 사람들, 오랜 역사 속 인물들, 언론에 등장하는 사건의 주인공들, 빌 게이츠 같은 부자들, 주변의 장삼이사들도 똑같았다. 모두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 되지 못한 채 죽었다. 세종대왕도. 이순신 장군도.    

  

참 별것 아닌 진실이다. 누구나 아는 진실이다. 그런데 나는 이 별것 아닌 진실을 오랜 세월 실패의 쓴잔을 마셔가며 겨우 발견했다. 바보처럼!!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한 걸음 더 깊은 진실에 눈을 떴다. 나는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보다 항상 크다는 것. 나는 어떤 나보다 항상 크다는 것. 내 안에 아직 발현되지 않은 진짜 나, 나보다 항상 큰 내가 있다는 것. 그러니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것에 지나치게 연연해하거나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가 이 진실을 발견하게 된 데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에니어그램 전문가인 리처드 로어(Richard Rohr) 신부가 쓴 [불멸의 다이아몬드]가 도움이 됐다. 수많은 밑줄을 그어가며 두 번 읽었는데 ‘진짜 자기란 무엇인가?’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우리의 진짜 자기를 만들지도 않으며, 또한 어떤 도덕적 혹은 제의적 행동을 통해 그것을 얻거나 성취하지도 않는다. 진짜 자기는 우리 모두에게 완전히 거저 주어진 영원한 자비이며,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53쪽)      


책 전체가 감동이요 공감이었지만 특히 저 말에 공감이 됐다. 바로 저것이 인간의 근원 진실이라고. 내 속에서도 공명하듯 새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짜 나’가 ‘지금의 나’보다 항상 크다. ‘지금의 나’가 아무리 형편없다 하더라도 ‘지금의 나’가 ‘진짜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나라는 존재는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예수도 사람을 그런 존재로 봤다(마태복음 16:26). 그러니 나는 나를 사랑해도 된다. 아니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축구를 배우고 요가를 배우듯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이 외침이 속에서 터져 나오자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존재로부터의 자유가 준 선물이었다. 사실 이 두 가지 진실은 모순이다. 인간이 될 수 없는 내 안에 참인간이 있다는 것, 이건 말이 안 되는 모순이요 역설이다. 그런데 이 모순과 역설을 품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걸 어찌하겠는가.      


나는 요즘 기회 있을 때마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1년 전(21년 5월)에는 [Love Yourself]라는 글을 써서 SNS에 올리기도 했다. 한 부분만 인용해본다.      


“‘Love Yourself’는 새로운 외침이다. 21세기가 돼서야 겨우 피어난 새로운 언어다. ‘Love Yourself’는 20세기까지 사실상 금기어였다. 누구도 입 밖에 낼 수 없는 금기어. 누구도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되는 금기어. 특히 교회 안에서는 거의 원죄와 같은 것으로 통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다고 보았기에 더더욱 금기어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 금기어였던 ‘Love Yourself’는 이제 21세기의 중심 언어로 폭발했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수 만 년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겨우 ‘Love Yourself’라고 말하기 시작한 셈이다. 나는 인류가 이 한 마디를 하게 된 것을 가히 [인류사의 대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위대함, 개인의 숭고함, 개인의 주체성에 진정으로 눈뜬 [인류사의 대혁명]”(https://www.facebook.com/byungsun.jung.9)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까지, 아무런 내적 외적 억압 없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기까지, 인간이 되겠다는 꿈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발견하기까지 반백 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되겠다는 이 꿈같은 꿈, 결코 이룰 수 없는 꿈,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낭만적인 꿈을 붙잡고 씨름해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그 꿈 때문에 현실에 닻을 내릴 수 있는 꿈들을 놓쳤고, 결국 손에 쥔 것 없는 빈털터리 인생이 됐지만, 지금 내 허물과 부족이 드러나도 그리 초조해하거나 실패자라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인간이 되겠다며 동동거리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있고, 내적 외적 억압 없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됐다면, 이거 대박 터진 것 아닌가.    

  

마지막 사족 하나. 


사는 동안 결코 이룰 수 없는 이 꿈(The Impossible Dream)이야말로 인간이 품고 씨름할 만한 진짜 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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