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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늘을 보아]

책 리뷰(1)

    

비영리 단체 [나눔 문화]를 통해 전 세계의 약한 자, 고난 받는 자, 소외된 자와 동행하고 있는 박노해 시인의 새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가 초록 5월에 나왔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후 무려 12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다. 푸른 하늘에 푸른 별들이 박혀 있는 하드커버에 새하얀 제목이 작지만 또렷이 새겨져 있는 시집은 마치 시인의 분신인 듯 반가웠다. 12년만의 출간. 12년은 시인의 인생 중년이 담긴 의미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시인은 깊은 골방과 넓은 세상을 걸으며 체득하고 깨친 삶의 진실을 정갈한 시어들로 제련해 내놓았다.    

  

1. 박노해의 시     

시집을 펼쳐 읽으며 박노해의 시는 단지 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언어는 핏빛 진실이요 존재의 생기이며 인간과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었던 것.      

그는 시 ‘너의 어휘가 너를 말한다’를 통해

어휘는 나를 빚어가는 손길 

나의 글월이 나의 수호자

나의 문맥이 나의 길

나의 어휘가 바로 나 자신이다

라고 말한다.  

   

30년째 쓰고 있는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다가 만(萬) 년을 쓴다는 펜촉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만년필로 사박사박 글을 써가니 

우쭐해진 만년필이 그런다

난 만 년이 지나도 계속 쓸 수 있을 테니 

그대가 쓰는 시와 생각과 마음씨가 

만 년이 지나도 계속 살아있게 하라고     

그래, 만 년의 도구로 

백 년의 글을 쓸 순 없지

....

....

30년 동행길에 나도 닳았고 너도 닳았으나

나는 오늘도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나날이 새롭고 갈수록 깊어지는

만 년에 빛나는 글을 쓰고 말 테니

(만년 필 중에서)    

 

이 시집을 묶어내는 과정에서도 시인은 말한다.      

나는 반성한다

쓰레기 같은 3천여 편의 

내 육필 원고를 안고     

301편을 간추리고 

3달 내내 빼고 줄이고

다시 쓰고 고쳐 쓰고

갈아내고 융축한다     

한 자만 건드려도 

폭발할 때까지      

이만하면 괜찮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시집을 펴낸다

가라, 시여

(초고는 쓰레기, 중에서)     


이런 마음과 각오로 뼈를 깎듯 어휘 하나하나를 제련하는 사람의 글이 바로 박노해의 시다.      

그래서일까. 박노해의 시를 찬찬히 새겨 읽다보니 처연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일렁인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피가 불끈 솟구치는 순간들도 많았다. 특히 [최후의 부적응자로]가 그랬다. 

[아버지, 내 아버지]를 읽으면서는 속으로 깊이 울기도 했다.      

박노해의 시 301편은 어휘 하나 문장 하나가 촌철살인이다. 

삶과 존재 전체를 투신해 뽑아낸 최소의 언어, 깊은 언어, 살아있는 언어들이다.      


2. 시인 박노해      

박노해의 시는 단지 시가 아니다. 그의 어휘 하나하나는 존재의 덩어리요 핏빛 진실이며 우주의 소리이다. 그래서일까. 시집을 읽었는데 시를 읽는다기보다 시인 박노해를 읽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혁명가 

누구보다 강인한 사랑꾼

누구보다 글에 진중한 사람

누구보다 역사에 충실한 사람

누구보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사람 

누구보다 깊고 숭고한 사람

누구보다 진실에 깨어있는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외롭고 아픈 사람

그 사람 박노해를 만났다.   

   

시인은 [최후의 부적응자로]에서 다짐한다.      

무디어지지 말자

적응해가지 말자

익숙해지지 말자   

  

[경계(警戒)] 에서도 다그치듯 말한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오늘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위해 오늘을 유보하지 말 것  

   

정말 언어 하나하나마다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삶의 잠언이요 무디어짐을 내리치는 죽비다.      

시집을 다 읽고 품에 안았다. 또 한 권의 책동무를 마음 깊이 영접했다. 참 기뻤다. 뿌듯했다. 내 남은 생애가 얼마일지 모르나 삶의 길목에서 간간이 만나 대화의 목을 축일 좋은 벗 하나를 얻어서.     

자고로 좋은 책 한 권은 억만금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게 평소의 소신인데 작년에 나온 작고 두꺼운 잠언집 [걷는 독서]와 이번에 나온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가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소중한 글을 우리에게 선물한 시인 박노해, 작고 연약한 생을 위대하고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는 시인 박노해 님에게 감사의 두 손 모은다.      

#박노해  #너의하늘을보아  #시집추천

#책읽는병선  #독서광모델

@park_no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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