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본격적인 평일의 시작, 월요일. 오늘은 지난 금요일보다 늦은 8시에 눈을 떴다. 출근 때문에 미뤄둔 아침잠이 점점 늘어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백수는 늘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한다. 그래도 오늘은 나름 일정이 있다. 이제껏 제대로 챙기지 못 한 내 몸을 챙기는 일.
외출 준비를 마친 뒤 식탁 위에 올려진 주먹밥을 냠- 먹는다. 참기름에 버무려 고소하고, 맛있다. 건강한 한 끼로 오늘 아침 힘차게 출발이다.
퇴사 후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일까? 아침 일찍 출근할 필요도, 일찍 잠에 들 필요도 없다. 마치 보상심리처럼 밀린 잠과 밀린 휴식을취하려고 한다. 갑자기 생긴 여유에 의욕이 없어져무언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회사를 다니며 쉬지 않고 앞으로만 달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모든 건 쉼과 관련된 증상이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이제껏 돌보지 못한 그런 종류의 것들 말이다.
나 역시 그렇다. 회사에 다니며 매주 무릎 치료를 받고 있지만, 일주일 내내 무릎을 쓰고 한 번의 치료를 받는 것. 부진한 치료 결과와 회사에 대한 여러 스트레스는 건강에 대한 악순환만 낳았다.
퇴사를 하면 무언가 달라질까? 큰 확신은 없지만,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퇴사를 했다.
병원에서는 현재 건강으로 운동을 할 수 없으니 평소에 꾸준히 걷고, 스트레칭하는 것을 권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것 만으로 그날의 모든 체력을 소진했고, 늘 따라다니는 무릎 통증은 건강에 대한 의욕마저 없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여유로운 평일,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일상. 병원까지 도보로 25분, 종아리 근육을 잘 쓸 수 있도록 발끝에 집중한다.
9월인데도 아직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병원에 도착했다. 분명 오늘로 예약을 했는데 전산 오류일까? 예약이 되지 않았다며 잠시 확인해 보겠다 말한다.
이상하다. 원래라면 헛걸음했다고 신경질이 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치료 못 받으면 왕복으로 운동했다 치고 집에 가지, 뭐.
매사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확실히 퇴사를 하고 나니 화가 줄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마음을 여유롭게 가져서 그럴까? 예약 없이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1회당 12만 원의 40분짜리 비싼 도수치료는 아무런 수익이 없는 내게는 부담이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일주일의 컨디션을 묻는 선생님에게 지난번 무릎을 세게 부딪히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있어 4일 정도 걷기 운동을 하지 못했다 말하니 아이구-앓는 소리를 낸다.
그래도 이제 퇴사를 했으니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 걷기 운동해야지. 병원을 다니는 동안 한, 두 번 밖에 하지 못 한 스트레칭도 꾸준히 해야지.
집으로 돌아와 이른 점심을 챙겨 먹는다. 날이 더웠으니 오늘 점심은 시원한 콩국수다. 야무지게 열무김치와 국수를 한 입에 넣고, 국물까지 들이켰다. 더위가 한 번에 가시는 기분이다.
오후에는 알바몬에서 단기알바를 찾고, 시간이 맞는 몇 개에 이력서를 넣어본다. 그리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족여행을 위해 여행지를 검색하고, 일정을 정리한다. 오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하루의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출근을 하지 않는 하루도 이렇게 바쁠 수 있구나. 크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도 그렇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퇴사 우선순위를 잊기도 한다.
쉬겠다고 마음먹어놓고 잡코리아에 들어가 이력서를 넣고 있을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하겠다고 마음먹고도 달력엔 온통 약속이나 여행으로 꽉 차 있을 수도 있다. 쉼보다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겠다며 시간을 쏟고 있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건강을 위해 퇴사했지만 건강만을 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건강이라는 수치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불쑥 나는 내 우선순위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나의 우선순위도점검이 필요할 것 같다.
key point. 퇴사 후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건강이다.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꼭 건강이 나쁘지 않더라도 일을 다니며 자신의 건강에 대해 소홀히 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평소 일을 핑계로 운동을 미루지는 않았는지, 스트레스로 잠을 설치지는 않았는지 등을 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길러야 한다. 퇴사 후의 일상은 바로 체력에서부터 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