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의일만 할거야?
"You either win or you learn. There's no losing."
넷플릭스 드라마 《나르코스》에서 실패한 작전팀장이 한 말이다.
우리는 진 게 아니야. 배운 거야. 그 말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지고도 배우지 않으면 그게 진짜 패배라는 뜻이다.
직장 생활 23년. 대기업 8년, 중소기업 15년.
프로젝트 실패를 수도 없이 봤고, 많이 겪어왔다.
근데 실패를 대하는 태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완전히 다르다.
대기업은 실패를 무겁게 다룬다.
경쟁입찰 하나 지면 팀이 사라졌다. 해체, 발령, 전환배치.
이유는 늘 똑같았다. 효율이 떨어졌다는 것.
실패는 곧 무능의 증거였고, 무능은 조직에서 용납되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실패는 잘못이고, 잘못엔 책임이 따르며, 책임은 누군가 떠안아야 한다고.
그게 대기업에서 본 실패의 풍경이었다.
한마디로 실패는 배움이 아니라 책임 소재를 밝히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중소기업에 와선 완전히 달라졌다.
고객을 놓쳤는데도 팀은 해체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장은 말했다.
"다음에 잡자. 왜 졌는지만 정확히 알아내." 끝. 그게 전부였다.
조직의 사이즈 자체가 작기 때문에 인력의 전환배치도 쉽지 않았다.
간접비가 크지 않았기에 실패로 인한 매몰비용도 상대적으로 작다.
그렇게 우리 팀은 그대로 다음 프로젝트를 뛰었다.
실패를 해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팀은 결국 이기는 경험을 맛 보았다.
그때 알았다. 아, 이런게 실패가 회사를 키운다는 거구나.
실패를 겪고도 남아서 다음 기회를 잡는 사람들. 그들이 결국 조직의 근육이 된다.
대기업은 실패를 문서로 끝낸다.
보고서 쓰고, 원인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낸다. 그리고 태스크포스팀은 해체된다.
성과가 남아도 경험은 남지 않는다. 실패는 잊히고, 사람도 잊힌다.
다음 프로젝트는 또 다른 팀이 맡고, 그들은 비슷한 실수를 반복한다.
왜냐하면 실패의 경험이 전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실패를 감당한다. 기회는 많고, 실패의 책임은 비교적 작다.
그래서 몸으로 부딪칠 수 있다.
실패해도 괜찮은 분위기. 아니, 오히려 실패가 자산이 되는 구조다.
실패는 회사가 감당하고, 배움은 내가 챙긴다.
이건 직장인이 쓸 수 있는 최고의 레버리지다.
실패의 비용은 회사가 지불한다. 손실은 회사의 재무제표에 찍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 시장에 대한 이해,
고객의 숨은 니즈, 경쟁사의 전략, 내부 프로세스의 맹점들. 이 모든 건 내 머릿속에 남는다.
그리고 이건 회사가 가져갈 수 없다. 퇴사하는 날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도 내 것이다.
대기업은 빠른 실패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혁신을 외치지만 정작 실패를 두려워하는 조직. 그래서 모두가 안전한 길만 간다.
검증된 방법, 전례가 있는 의사결정, 책임을 분산시키는 구조.
실패하지 않기 위한 시스템은 완벽하지만, 그 안에서 아무도 배우지 못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맷집이 있다. 졌다고 끝나지 않는다. 다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팀이 해체되지 않으니 실패의 경험이 축적된다.
어제 실패한 영업팀이 오늘 다른 고객을 찾아간다.
지난달 놓친 계약의 원인을 분석한 마케팅팀이 이번 달 새 전략을 실행한다.
대기업에서 8년 동안 쌓은 스킬보다,
중소기업에서 1년 동안 겪은 실패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 실패들은 내가 직접 감당하고, 직접 해결하고, 직접 극복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 말자. 실패는 끝이 아니다. 리허설일 뿐이다.
회사 돈으로 무료로 제공되는 실전 훈련이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안 좋을 사장님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이런 직원들을 보유한 기업이 결국 성공한다"고.
실패할 때 제대로 관찰하고, 제대로 기록하고, 제대로 배우자.
그게 결국 내 자산이 된다.
같은 실패를 겪어도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군가는 배운다.
그 차이가 5년 뒤, 10년 뒤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든다.
실패는 회사 몫이지만, 배움은 오롯이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