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는 종합예술인이다

평생 남의 일만 할거야?

by 손동진

"사업은 재능이 아니라, 여러 재능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무대 위에서 힙합과 재즈가 흐르고, 배우들은 노래하며 춤추고, 조명은 시대를 가로지르며 변한다.

의상은 18세기와 현대를 넘나들고, 무대 장치는 회전하며 장면을 바꾼다.

작곡가는 린마누엘 미란다 혼자지만,

그 무대를 완성한 건 안무가, 조명 감독, 무대 디자이너, 음향 기술자, 수십 명의 배우와 스태프였다.

미란다가 아무리 천재라도 혼자서는 단 한 편의 공연도 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창업이 바로 그렇다.


반대로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빠르게 막을 내린 뮤지컬들을 떠올려보자.

<캐리〉는 단 5회 공연 만에 막을 내렸다. 음악은 괜찮았다. 스토리도 유명한 원작이었다.

하지만 무대 연출이 과했고, 관객의 취향을 읽지 못했고,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요소가 동시에 어긋났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어도 조합이 틀리면 참패한다.

창업도 똑같다.


나는 처음에 한가지 핵심 역량이 있으면 사업은 자연스럽게 굴러갈 줄 알았다.

대기업에서 8년 동안 기획 잘하는 직원으로 칭찬받았고,

멋진 기획서 하나면 프로젝트가 승인되던 세계에 익숙했다.

그런데 사장이 되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렸다. 기획은 전체의 20%도 안 됐다.

나머지는 영업이고 재무고 인사고 법무고 운영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창업은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일이구나.


뮤지컬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기획은 대본이다. 스토리의 뼈대를 만드는 일.

브랜딩은 무대 디자인이다. 관객이 처음 무대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을지 결정하는 일.

영업은 배우의 연기다. 아무리 좋은 대본과 무대가 있어도 배우가 관객을 설득하지 못하면 공연은 실패한다.

재무는 음악 스코어다. 템포를 놓치면 전체가 무너진다.

채용은 캐스팅이다. 잘못된 배우 한 명이 전체 하모니를 깬다.

조직 운영은 조명과 음향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이게 없으면 무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흥행하는 예술과 참패하는 예술의 차이는 뭘까.

재능의 차이가 아니다. 조율의 차이다.

〈해밀턴〉과 〈캐리〉의 차이는 기획자의 실력만이 아니었다.

미란다는 관객을 읽었고, 시대를 읽었고, 팀을 읽었다. 그리고 모든 요소가 서로 맞물리도록 조율했다.

반면 〈캐리〉는 각각의 요소는 괜찮았지만, 전체가 한 방향을 보지 못했다.

무대는 화려했지만 관객은 당황했고, 음악은 좋았지만 스토리와 따로 놀았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최고인데 망하는 스타트업이 얼마나 많은가.

제품은 훌륭한데 마케팅을 못해서, 영업은 잘하는데 재무 관리를 못해서,

팀은 좋은데 타이밍을 놓쳐서 무너지는 회사들.

한 파트만 뛰어나다고 공연이 성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창업자는 예술감독이 되어야 한다.

예술감독은 모든 분야를 최고로 잘 알 필요는 없다. 대신 알아야 한다.

어느 파트가 잘못 굴러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이 지금 팀의 템포를 빼먹고 있는지,

어떤 시장이 내 작품을 원하는지, 관객이 지금 무엇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결정한다.

부족한 파트는 어떤 스페셜리스트를 붙일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배치할지를.


흥행과 참패를 가르는 건 종종 운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16년 동안 창업을 하면서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됐다.

운이 좋은 사람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여러 분야에 능통한 사람이 네트워킹도 많이 되고, 그러면서 기회를 더 자주 보게 되고,

준비하게 되고, 그래서 그게 결국 운처럼 보이는 거라는 것.

음악만 아는 작곡가는 작곡가 친구만 만난다.

하지만 무대 디자인도 알고, 조명도 알고, 연출도 아는 예술감독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훨씬 더 많은 기회를 본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10년 넘게 공연하는 뮤지컬과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리는 뮤지컬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한 분야의 천재성이 아니라, 여러 분야를 읽고 조율하는 능력,

관객을 읽고, 시장을 읽고, 타이밍을 읽는 감각,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를 붙여서 채우는 결단력 말이다.


그래서 창업은 종합예술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한 분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눈이 있어야 한다.

템포가 맞아야 팀이 움직이고, 팀이 맞아야 작품이 완성되고, 관객이 열광해야 흥행한다.

그리고 예술은, 끝까지 버틴 사람의 작품만 남는다.

참패와 흥행 사이, 그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게 창업자의 일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