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남의 일만 할거야?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창업 생각만 하면 갑자기 현실 감각을 잃는다.
평소엔 엑셀, 거래처, 공정 하나하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막상 창업을 떠올리면 뜬금없이 카페, 굿즈, 유튜브부터 검색한다.
근데 그게 착각이다. 당신의 책상 위에 이미 답이 있다.
사장은 숫자와 큰 흐름을 볼 뿐이다.
반면 실무 직원은 욕이 절로 나오는 디테일을 본다.
매달 말마다 거래처 30군데 정산하느라 영수증 붙이고, ERP 뒤지고,
엑셀 깨져서 다시 만들고, 퇴근은 밀리는 직원의 입에선 이런 말이 나온다.
"이거 자동화하는 프로그램 있으면 천만원이라도 당장 산다."
창업 아이템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다.
현장에서 피 보는 사람이 제일 먼저 문제를 아는 법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케이스를 살펴 보자. 여기 두 사람이 있다.
둘 다 30대 중반이고, 둘 다 "언젠가 창업하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산다.
A는 B2B 중소기업의 영업지원 담당이다.
영업사원들이 따온 계약서 정리하고, 견적서 만들고, 재무팀와 숫자 맞추는 역할.
같은 부서의 동료들이 회사에서 제일 많이 쓰던 말은 이것이다.
"견적 양식 또 바뀌었어요? 이걸 또 손으로 고쳐요?"
A는 결국 이 귀찮음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엑셀로 임시 템플릿을 만들어서 영업사원들이 품목만 넣으면
자동으로 견적서에 마진 계산까지 나오게 했다.
어느날 이걸 쓴 영업사원이 말했다.
"야, 이거 우리 파트너 회사도 필요해하겠다?" 거기서부터 일이 커진다.
로코드 알바를 써서 견적, 발주, 정산을 한 번에 돌리는 작은 SaaS로 만들었다.
초기 고객은 어디서 나왔냐고? 그냥 자기 전·현직 거래처에서 나왔다.
A가 잘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본업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첫 고객이 이미 주변에 있었던 것뿐이다.
B는 나름 일 잘하던 기획자였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더니 공유 주방에 디저트 브랜드로 창업했다.
문제는 F&B 해본 적 없음. 식자재 단가도 모름. 배달 플랫폼 수수료 구조도 모름.
그나마 아는 건 인스타 감성 사진 몇 장. 초반에 인스타 팔로워는 조금 늘었다.
손익을 맞춰보니까 '많이 팔수록 적자' 구조였다. 결국 1년 버티고 접었다.
B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내가 아는 세계'가 아니라 '예뻐 보이는 세계'를 골랐기 때문이다.
A는 본업에서 파생된 문제를 풀었고, B는 인스타에서 본 환상을 좇았다.
초기에는 B가 더 멋있어 보였다. 근데 끝까지 돈 버는 건 A였다.
왜 본업에서 찾는 게 유리한가?
첫째, 당신은 고객을 이미 알고 있다.
어떤 순간에 고객이 화내는지, 뭘 빨리 해달라고 소리 지르는지, 어떤 조건에서 지갑을 여는지.
이걸 모르는 사람은 돈 들여서 인터뷰해야 한다.
반면에 당신은 그냥 지금 하는 일만 곰곰이 다시 보면 된다.
둘째, 문제의 진짜 원인을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보고서가 복잡하다'인데,
실제로는 시스템이 서로 안 맞고, 중간에 두 번씩 입력해야 하고,
회사마다 양식이 달라서 비효율적인 구조인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그 일을 항상 하고 있는 당신이다.
셋째, 검증 비용이 싸다.
창업 책에서는 'MVP를 만들어라'라고 말한다.
근데 MVP도 테스트할 고객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본업에서 출발하면 동료들 상대로 베타 테스트하고, 기존 거래처 상대로 돌려보고,
팀장 상대로 "제가 이거 프로세스 한 번 바꿔봐도 될까요?"라고 제안하면 된다.
이 정도만 해도 일반 예비 창업자들보다 몇 배 빠른 검증을 할 수 있다.
넷째, 안전망이 있다.
본업과 무관한 창업은 '올인' 아니면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근데 본업에서 파생된 아이템은 처음엔 그냥 '내 일 효율화 프로젝트',
조금 되면 '사내 실험 프로젝트', 그다음이 '외부에 슬쩍 팔아보는 부업'이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갈 수 있다. 중간에 망해도 경력과 실적은 남는다.
그럼 본업에서 창업 아이템을 어떻게 뽑으면 될까?
'짜증'을 데이터로 수집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하루 동안 이런 순간을 적어보자.
"아 이거 왜 내가 또 해?" "이건 진짜 사람이 할 일이 아닌데..."
"이건 시스템이 있어야지, 왜 사람이 메꾸지?"
이게 다 사업 기회 리스트다.
그 다음엔 반복되는지, 나만 힘든 건지 확인하자.
한 번 빡세고 마는 일은 그냥 사고다.
근데 매달, 매주, 팀 전체가, 거래처까지 같이 힘들어하는 구간이면
그건 서비스나 제품 아이디어가 들어가야 할 지점이다.
질문은 이거 하나면 된다.
"이 문제로 매달 야근하는 회사가 우리만 있을까?"
아니라면 시장 크기는 이미 충분하다.
그 다음엔 돈이 어디서 새고 있는지 적어보자.
이 일 때문에 추가로 들어가는 인건비, 실수로 생기는 손실, 외주로 나가는 돈.
대충만 적어봐도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 감이 온다.
여기서부터는 숫자 싸움이다.
"이 업무 한 번 줄이면 월 몇 시간, 몇 명, 얼마가 절약되냐"를 계산해보자.
마지막으로 '내 사업'을 하기 전에고 '사내 실험'부터 하자.
처음부터 "이걸로 창업할 거야"라고 달려들면 안된다.
먼저 회사 안에서 파일, 매뉴얼, 간단한 툴로 테스트해라.
프로세스를 한번 바꿔본다. 자동화 파일을 만들어서 돌려본다.
체크리스트나 매뉴얼을 만들어 팀에 공유해본다.
이게 통하면 그때부터 그걸 '서비스화'할지 고민해도 늦지 않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회사에 해가 되는 수준으로 '빼내오면' 그건 범죄다.
회사에도 이익이 되게 만들면서 나는 나대로 노하우와 레퍼런스를 챙겨라.
회사의 고객 리스트, 영업기밀, 소스코드를 몰래 가져오는 건 도둑질이다.
하지만 당신이 현장에서 몸으로 배운 문제 인식, 노하우는 당신의 자산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신이 그걸 잘 정리해서 사내 효율화에 먼저 써먹으면
이미 그걸로 한 번 이익을 본 거다.
그 이후에 당신의 커리어와 사업에서 다시 써먹는 건
'현장에서 몸으로 배운 기술을 들고 나가는 것'에 가깝다.
사장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다.
대신 나라면 그런 직원에게는 최소한 이렇게 말할 거다.
"어디 가서도 우리랑 일했다는 게 네 자랑이 되게 해라. 그럼 나는 됐다."
중소기업 직원에게 창업 아이템의 정석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 하는 일에서 가장 욕 나오는 부분을 고르자.
그리고 그걸 돈을 받고 대신 해결해주는 구조로 바꾸자.
거창한 게 아니다. 대단한 영감도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