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의 삐딱한 비평
발자크는 이상한 소설가였다.
파리의 골목, 시장, 귀족의 응접실, 고리대금업자의 사무실. 그는 사람들의 걸음걸이, 옷의 재질, 손에 든 물건, 말투의 억양을 수집했다. 한 사람이 먹는 음식만 봐도 그의 재력과 출신과 지금의 감정 상태를 읽어냈다. 노트에 쌓인 관찰들은 방대했다. 인물의 이름, 직업, 부채 금액, 말버릇, 식습관까지 모두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건 데이터였다. 날것의 기록이었다.그가 <인간희극>이라고 이름 붙인 방대한 기획은, 사실 소설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자연사였다.
발자크의 관찰 노트는 요즘 세상으로 치면 '페르소나 DB'다.
요즘 마케팅에는 관찰 도구가 넘쳐난다. 클릭률, 전환율, 검색 여정, 소비자 행동 경로. 발자크가 평생 발품 팔아 모은 것보다 훨씬 촘촘한 데이터가, 지금은 버튼 하나로 쏟아진다. 어떤 순간에 무엇이 불안했는지, 어떤 단어를 입력하면서 결정을 미뤘는지, 어느 지점에서 마음이 기울었는지. 수억 건의 디지털 흔적 위에 인간의 욕망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발자크의 관찰 노트가 데이터베이스가 된 세상이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마케터는 대시보드가 화려해질수록, 숫자가 많아질수록, 거기서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데이터를 더 쌓으면 전략이 보일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더 많은 툴을 구독하고, 더 많은 지표를 만들고, 더 두꺼운 리포트를 찍어낸다. 그런데 숫자를 나열한다고 전략이 되지 않는다. "이번 달 CTR이 2.3% 상승했습니다"는 발자크가 "오늘 파리 시장에서 귀족 부인 한 명을 봤습니다"라고 노트에 적은 것과 다를 게 없다. 관찰이다. 거기서 멈추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AI는 패턴을 찾아주고, 소비자 심리를 분석해주고,
심지어 전략까지 제안해준다. 마케터들은 열광한다.
나는 이 지점이 좀 불편하다. AI가 과거 데이터에서 반복되는 규칙을 찾아내는 것. 그건 마치 발자크의 노트를 읽고 "이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요약하는 것과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그걸로 소설을 쓸 수는 없다. 발자크가 위대했던 건 패턴을 발견해서가 아니다. 패턴 너머의 인간을 봤기 때문이다. 고리오 영감이 왜 딸들에게 그렇게까지 했는지를, 숫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건 데이터가 줄 수 없는 것이고,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진짜 인사이트는 데이터에서 나오지 않는다."왜 이 사람은 이 순간에 이걸 검색했을까." "이 불안의 뿌리는 어디서 왔을까." "이 구매 결정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은 뭘까." 이 질문들은 AI가 먼저 던지지 않는다. 마케터가 먼저 던져야 한다. 그 질문이 없으면 AI가 뽑아준 인사이트는 그냥 잘 정리된 관찰 노트일 뿐이다. 그래서 어떤 마케팅 솔루션은 사람들이 검색창에 입력한 키워드를 바탕으로 의도를 추론하고 AI를 시켜서 분석하게 만든다. 이건 차라리 말이 좀 된다.
발자크가 만약 AI한테 파리 관찰 노트를 맡겼다면,
인간희극이 아니라 잘 정리된 19세기 파리 인구통계 보고서가 나왔을 것이다.
AI 인사이트가 보편화되면, 모든 마케터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같은 데이터를 넣고, 같은 AI를 돌리면, 비슷한 패턴이 나온다. 경쟁사도 같은 툴을 쓴다. 같은 소비자 데이터를 본다. 같은 인사이트를 받는다. 그렇게 되면 시장에는 비슷한 메시지, 비슷한 캠페인, 비슷한 전략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도구가 평준화될수록, 해석의 깊이가 유일한 차별점이 된다. 데이터는 소설을 쓰지 않는다. 소설은 그것을 읽는 사람이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