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바로 앞에는 큰 연못을 낀 공원이 있고, 공원옆으로 공립 초등학교와 유치원, 방과 후 교실등이 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생각하면 안 된다. 건물과 아스팔트 사이사이 나무와 풀들이 더부살이하는 게 아니다. 호수와, 잔디밭과, 나무들과 풀들 사이사이에 학교와 유치원이 더부살이 중이다. 한국에서 갓 날아온 새내기인 내 눈에는 과하게 자연친화적이다 싶을 정도이다.
아이들 하교로 햇살이 찬란한 오후에 공원을 통과하다 보면 몇 번이나 눈을 비비게 된다. 내가 헛것을 보았나 싶어서. 분명히 핸드폰 달력은 12월을 가리키고 있는데 눈앞의 초등학생이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뒤돌아서 사라지는 모습을 우두커니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더 앳되보이는 아이가 반바지를 입고 신나게 뛰어온다. 흠... 하늘을 보니 햇빛은 쨍쨍하고 영하의 온도는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패딩과 머플러로 완전무장을 했기에 현재의 온도를 완벽히 가늠할 순 없다.라고 쳐도 반바지라니? 반팔이라니? 분명 초등학생이 맞는데? 아니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패딩과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한 나와 반팔 반바지로 한여름 패션을 자랑하는 아이와의 찰나의 스침이 기묘하다. 아니 왠지 모르게 창피하다.
확장된 동공을 겨우 달래며 유치원 앞을 지나간다. 엄마들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아이들 하교 시간을 기다린다. 엄마들 옆으로는 자전거들이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앞뒤로 키즈체어가 당연하다는 듯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뒤가 아니라 앞뒤이다. 지나가면서 내가 본 자전거의 거의 대다수가 그랬다. 나는 엄마들이 타는 자전거 중 키즈체어가 없는 자전거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건 내가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뽀뽀하는 것과 같은 희박성을 자랑한다.
언젠가 걷기 모임에서 이곳 쓰쿠바시의 출산율에 관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은 지금 전반적으로 출산율이 올라가는 추세인데 특히 쓰쿠바시는 그 성장세가 가파르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 셋 출산은 지극히 평균치이며 넷, 다섯 아이엄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심지어 여섯 명을 낳은 엄마도 보았다고 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는 쓰쿠바시는 우리나라 대전과 비슷하다. 일본 연구기관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고 유해시설이 거의 없다. 농담조로 심심한 도시라 땅거미가 꺼지면 다들 일찍 집으로 들어가 출산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고도 한다. 진담조로 해도 맞는 말 같아 보였다. 백화점, 마트도 적당히 분포되어 있지만 도쿄처럼 정신없지도 않다. 적절히 조화된 자연과 평화로움 사이에서 높은 출산율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여러 육아 관련 복지도 한몫했을 터이다.
또한 쓰쿠바시는 일본 내의 도시 중에서도 굉장히 외국인 친화적인 도시라고 한다. 연구기관이 많으니 세계각국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쓰쿠바대학이 있어 교환학생으로 오가는 외국학생들도 꽤 많은 편이다. 수긍이 갔다. 내가 사는 곳만 둘러봐도 외국인을 발에 차이도록 보기 때문이다. 쓰쿠바센터에서 한국인 대학생들의 도움도 몇 번 받았다. 공립 초등학교에도 외국학생들 분포가 꽤 된다. 까맣고 하얀 피부의 아이들이 동그랗고 기다란 속눈썹을 자랑하며 등교하는 모습을 매일 본다. 그래서 이곳 일본인들은 외국인들에게 더 개방적이라 할 수 있다. 쓰쿠바시 옆의 스치우라시만 가더라도 외국인들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변화가 드라마틱하다고.
하교길에서 엿보는 일본의, 아니 내가 사는 쓰쿠바시의 모습들이 꽤나 재미있고 신선하다.
그럼 이참에 나도 내일 반바지 반팔 도전? (기침이 오래가니 정신도 오락가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