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풍경들이 이어졌지만 참을만했다. 두 시간을 3분 앞두고 버스가 터미널 입구에 들어섰다.
"외할머니다!"
아이들의 업된 목소리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힘차게 말아 올려진 뽀글 머리의 허여사가 잇몸이 다 보이게 웃고 있었다. 팔을 양옆으로 힘차게 흔들면서.
시작은 귤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식탁에 놓여있는 귤을 들이민다. 사소한 깔깔거림이 몇 번 오간 후 취조투의 질문이 던져진다.
"배 안 고파?"
"아니요. 별로요."
"저는 쪼금 배고픈 것 같아요."
순식간에 쌀이 휘휘 씻겨진다. 음식을 못했다던 허여사의 가스레인지 위에는 8인분쯤의 닭볶음탕과 어묵국이 끓기 시작한다. 잠시뒤 밥, 닭고기, 김치를 얹은 숟가락이 열심히 아이들 입속으로 들어간다. 버릇 나빠진다고 잔소리를 해대도 허공 속 메아리란 걸 잘 알기에 나는 소 닭 보듯 한다. (내심 편한 것도 있었다.)
닭고기가 위속에서 소화도 안될 시간인데 편의점 행차란다. 분명 건전지를 사러 갔는데 아이들 손에는 맞춤형 과자들과 취향저격 음료수가 가득하다. 그러려니 하며 한숨 자고 나오니 기분이 싸하다. 다 같이 외할아버지의 최애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보고 있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허여사를 본다. 허여사는 꿀을 듬뿍 바른 딸기를 포크로 찍어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먹이기 바쁘다. 보는 내가 살이 오르는 듯하다.
이것이 끝이라면 섭섭하다. 손가락을 두드리기 십 분 전에 계란 퐁당 라면까지 마무리한 건 안 비밀이다. 하나는 손주의 진라면, 하나는 손녀의 칼국수라면.
오늘의 하루는 아직 마감되지 않았고 우리는 일주일정도 머무를 예정이다. 사육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