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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수백개의 가면인가보다.

by 정효진

사실 홀로 카페에 가고 싶었다. 아니다. 방에 아무렇게나 누워 찜해둔 책들을 원없이 읽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교보문고에 갔다. 태블릿을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 같은 모습을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잠시 읽고만 오려했다.(내 책도 읽고) 하지만 책을 꼭 껴안고 앙탈 부리는 모습에 어찌 지갑이 안 열리랴? 아이들 책 4권을 사고 내 책은 그림자도 못 보고 나왔다. 근처에 칠성사이다와 콜라보로 팝업스토어 같은 걸 하는 곳을 발견하고 또 알차게 놀았다. 칠성사이다 색칠하기, 팔찌 만들기, 사다리게임하기, 미션완성하고 병사이다 받기.

나름 뿌듯하게 반나절을 보내고 돌아왔다.


한 시간 뒤 파우더만 틱틱 바르고 다시 길을 나섰다. 3년 만의 고등학교 동창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약속장소 잠실역에 교보문고를 발견하고 부러 일찍 나왔다. 하루에 교보문고 두 번가는 사람 누구? 나야 나.(광고문구였던 것 같다...) 낮에는 그림자도 보지 못했던 책들을 축복 속에서 읽었다. 읽고 싶었던 퓨처셀프도 후루룩 완독 했다.


"시각을 바꿔 장기적인 나와 연결하라."

"미래의 내가 되는 1단계는 현실적인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는 것이다."


4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에너지를 충전받는 이 기분이란.

그 후로 친구와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며 추억을 나누고 세월의 경험을 공유했다. 풋풋했던 시절을 공유한 우리들은 즐거웠다. 하지만 직장인인 친구는 삶의 스트레스로 꽤 지쳐보었다. 친구를 위로하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 내 삶의 가치관과 생각들을 서로 완벽히 공유할 수 없음에 허한 감정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서로 다르게 그려진 세월의 나이테일 뿐이다. 그래도 내가 책을 내면 같이 24만 원짜리 스테끼를 썰자고 깔깔대고 웃으며 헤어졌다.


오늘은 딸아이 대학병원 예약날이었다. 여름에 눈수술 후의 검진일 뿐이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병원과 함께한 하루였다. 대학병원만의 특권이다. 대기실에 하염없이 앉아있자면 무심결에 뉴스를 보게 된다. 유명배우의 슬픈 소식, 로켓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이 절규하는 모습들, 이름 모를 정치인들의 모습들. 세상의 슬픔과 분노는 몽땅 뉴스 안에 있는듯했다. 진료 후 무언가 지친 몸을 이끌고 정문으로 간다. 내 옆을 민머리의 앳된 아이가 엄마손을 의지해 스쳐간다. 잠시 후엔 한걸음도 떼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중년여인이 힘겹게 부축한다. 그들의 잔상을 뒤로하고 정문에 도착한다. 휠체어를 탄 노인을 태우려 잠시정차한 차를 향해 누군가 클락션을 사정없이 눌러댄다.


삶은 원래 이런 곳인데 내가 너무 희망회로만 돌리며 사는 건가?

아니면 삶의 힒듬에 침잠하지 말고 빨리 빠져나오는 게 맞는 건가?

모르겠다.

다만 나만의 시간이 부족하다고 비상등이 켜진건 확실하다. 또 이렇게 급하게 끄적이고 있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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