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ㅡ오지호(1937)
하얀 사과꽃나무 아래서
옅은 봄바람이라도 불어준다면
하얀 물결 이루며 날아가
지친 어깨 위에
포갠 두 손 위에 살포시 속삭여볼래요
나무 사이 사이 고운 바람이 살랑 불면
하얀 사과꽃이 사르르 날리겠지요
그 아래 빨간 돗자리펴고
사과향이 나는 와인을 따를게요
아찔한 달콤함에 발갛게 오른 취기에
나리는 꽃잎을 잡아보려 휘저어도
녹아버리는 눈처럼 잡히지 않아요
영원을 꿈꿨던걸까요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열리겠지만
그리움은 바람결에 실려 날아간 꽃잎처럼
아득해지겠지요
이내 하얀 파도처럼 바스라져버릴까요
열어놓은 가방속으로 쏘옥 숨어들어간 꽃잎은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숨죽여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