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하지 않게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
당당해 보기로 했다. 여행이든, 인생이든.
인생을 배워오라는 상담사 선생님의 조언으로부터 시작된 방콕 여행도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간 후회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당당함"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 당당했을 때 바뀌는 나의 태도와 마인드.
아유타야에서 방콕으로 돌아온 날 저녁. 나는 남은 2주간 뭘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해 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인터넷을 열었고 '태국 여행지'를 검색했다. 파타야, 치앙마이. 크게 바다와 산으로 나뉘는 듯했다. 여러 여행지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 한 장. 에메랄드빛 바다. 그 사진에 이끌려 나는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았고 항공권과 숙소를 곧바로 예약했다.
이번에 떠날 곳은, 카오락이다.
카오락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일까. 주변 상권은 다 죽어있었고 빈 상점들이 많았다. 지나다니는 사람과 차도 별로 없어서 마치 이곳의 관광객은 나뿐인 듯싶었다. 더군다나 비가 온 탓에 카오락에서의 첫째 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비가 온 뒤엔 하늘이 맑다. 에메랄드빛 바다. 호핑투어. 내가 여기에 온 목적. 나는 길거리에 있는 한 투어사를 찾아갔다. 청천벽력. 내가 방문한 날엔 섬 투어 금지 기간이라는 것. 자연보호 겸 하는 거라지만, 너무 아쉬웠다.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투어를 신청했고 내일 떠나기로 했다.
다음날. 투어 시간에 맞춰 아침에 숙소 밖으로 나갔다. 기대하며. 하지만 10분.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버스에 나는 불안했다. 사기였을까. 30분쯤 지나자 연락이 왔다. 같이 투어 하기로 한 사람들이 일체 취소를 해버린 탓에, 오늘 투어는 갈 수 없게 되었다고.
나는 투어사를 찾아갔다. 그들은 미안하다는 태도로 투어를 내일 시켜주겠다며 환불을 거절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사장과 한바탕 말싸움을 벌인 뒤, 겨우 환불을 받아낼 수 있었다.
허망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이곳도 괜히 온 걸까.
무작정 걸었다. 40분쯤 걸었을까. 주변과 어울리지 않게 오토바이 랜트숍이 있었다. 무언가에 홀렸을까, 나는, 나의 발은 렌트숍으로 향했다.
무작정 빌린 오토바이에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아 허겁지겁 목적지를 찾아보았다. 서핑스쿨. 카오락에서 운영 중인 딱 한 곳의 서핑스쿨이 눈에 띄었다. 바로 출발했다. 무작정 찾아가 나는 인생의 첫 서핑을 경험했다. 나름 강했던 파도에서 아침에 있었던 스트레스를 파도에 휩쓸려 보내고, 그저 즐겁게 서핑을 탔다.
서핑 수업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길에 사람이 즐비해 보이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다시 한번 무작정 방문했다. 내가 서핑을 탔던 바다가 보이는 뷰에 마늘빵과 초코라떼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간. 동네로 돌아와 오토바이를 반납하는데 랜트숍 사장님이 알려주셨다. 근처에 야시장이 있다고. 그렇게 야시장에도 무작정 찾아갔다. 아무 야장에 들어가 꼬치와 볶음밥 그리고 자그마한 맥주 한 병을 마셨다. 해가 완전히 져 물었고 불빛이 많지 않은 카오락의 밤하늘은 달빛과 별들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하루였는데, 완벽한 하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운이 좋았던 하루에 불과할까 하며 신기했다.
"여유로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에도 전체가 완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유로움"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미 엎질러진 하루라고 생각하며 나는 될 대로 돼라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를 보냈다. 그런 마음이 나를 여유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행하며 만나온 사람들도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다. 단순히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여유"였다.
그런 여유에서 나오는 오토바이 렌트숍 사장님의 너그러움과 바닷가에선 본인의 파도를 끝까지 기다리다 때에 맞춰 자신의 파도와 달려가는 사람들. 야시장에선 그들의 음식을 파는 야장 주인들과 은퇴하시고 오신 노부부의 여행을 즐기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띠어져 있었고 조급해 보이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급할 수도 있을 렌트숍 사장님. 파도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서핑을 맘처럼 탈 수 없는 사람들. 음식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을 야장 주인. 은퇴 후 삶이 후회로 남아있을 수 있는 노부부. 모두가 걱정, 고민들로 조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모두는 여유로워 보였다. 조급해하지 않는 자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 해내야 한다는 집착. 그런 건 없었던 것이다.
여행을 오기 전의 내가 생각났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조급함. 친구를 많이 둬야 한다는 강박감. 결국은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온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결국 나를 더 불안하고 걱정에 사로잡히게 한다는 것을 오늘에야 몸소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내 길을 찾는데 시간을 가져도 된다고. "여유롭게"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