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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Oct 25. 2022

떡진 머리칼의 기억

개운함의 극치를 맛보았는가?

# 주의 #

"깔끔쟁이 및 깨끗함을 추구하시는 분들께는 권장하지 않는 글이오나 굳이 읽으시겠다면 말리지도 않는 글입니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두 번의 샤워를 한다

땀이 많은 여름날이나, 홈트라도 하는 날이면 당연 더 많은 횟수의 샤워를 한다

딱히 유분기가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생활습관이랄까? 그냥 해야지만 개운한, 일상의 루틴이다




떡진 머리를 감았을 때 그 개운함의 극치를 아는가?


#1. 오랜만에 그 느낌을 느끼다.


금요일.

여섯 시 퇴근과 동시에 캠핑장으로 떠나야 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지체하더라도 샤워를 한다.  그래야만 아침의 샤워에 맞춘 일상의 루틴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캠핑장엔 2박 3일을 같이 보낼 네 가족이 모였다.

가을의 끝자락을 애들과 함께 할 요량으로 2박의 일정으로 온 것이다

늦은 도착에 서둘러 텐트를 치고 일행들과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은 매너 타임으로 끝을 맺고 우리는 양치질만 한 채 침낭 속에 몸을 뉘었다

"내 이럴 줄 알고 미리 샤워를 하고 왔지"

비록 양치질만 한 상태지만 그리 찝찝하지는 않았다

나는 미리 샤워를 하고 온 스스로에게 만족한 양 자찬을 하고 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텐트 안에는 달큰한 숯불고기 냄새가 자욱하다

그 안에는 샤워도 잊은 채 꼼지락 거리는 네 개의 침낭잠을 청하고 있다


1박을 보내고 토요일 아침을 맞이한다

자욱한 아침 안개 속에 아직 잠을 덜 깬 텐트들만이 묻혀있는 고요한 아침이다

어제의 기름짐을 설거지로 말끔히 씻어내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머리가 가려워 온다

"그래!.  평일이라면 설거지가 아닌 샤워를 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루틴이 깨지며 머리칼이(정확히는 두피가 맞다) 반응을 하고 있는것이다


오랜만에 그 느낌을 느낀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느낌을!




#2. 떡진 머리칼의 기억.


목 위에 달려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깨질 듯이 시린 머리통에선 뿌연 김이 서려 올라온다

세숫대야에는 뜨거운 물이 아닌  꽁꽁 얼어붙은 얼음물이 담겨있다

떨리는 아래턱은 나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제 멋대로 이빨들을 부딪혔고 들숨, 날숨에 연신 허연 입김을 토해내고 있다


시리도록 찬 세숫대야에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기억은 초등학교 어느 학년 즈음의 겨울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의 겨울은 우리에게 계절을 운운할 정도의 낭만스러움을 주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주는 게 있다면 겨우내 쌓여있는 눈이 전부였다

탐구생활을 핑계로 지푸라기 담은 비료 포대 한 장씩 들고 이 산 저 산을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짧은 낮이 지나고 길고 추운 시골의 저녁이 찾아온다

덕분에 볼 빨간 촌놈으로 그 계절을 지나야 만 했다

겨울 바람이 문풍지 사이를 칼처럼 비집고 들어오면 구들장이 놓인 아랫목엔 한 뼘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픈 엉덩이들로 빼곡하다


어릴 적 우리 집엔 씻는 용도의 공간이 따로 없었다

방, 마루, 부엌, 화장실만 있을 뿐이었다

굳이 찾는다면 마당 한켠에 덩그러니 놓인 뽐뿌가 유일했다. 우리는 그 물을 받아 안방의 연탄불과  아궁이에서 데워 씻다 보니  항상 부족했을 터, 그렇게 겨울밤은 우리에게 양치질과 최소한의 씻음(세수 정도)만을 허락했다

그 최소한의 씻음에 머리 감기는 언감생심, 떡진채로 사나흘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3. 개운함의 극치를 맛보다.


"뭣이 중헌디"


궁금했다

사람이 머리를 오랫동안 감지 않으면 어떤 느낌일까?

참말로 1도 중허지 않은 쓸데없이 가벼운  궁금으로 시작되었다


"열흘"


저 시간의 흐름은 내 머릿속에 정확히 각인되어있다

왜냐면 엄청난 인내로 하루하루 견디며 열흘까지 세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못 참겠다"


머리를 안 감은 지 닷새날부터 가려움의 정도는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듯하였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 참고 견디었다

얼마나 견디나 보자며 쓸데없는 오기까지 발동시키며 인내의 한계로 나를 몰아갔다

열흘째의 늦은 밤

머리를 감지 않으면 밤을 꼴딱 지새울 것만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두피를 몽땅 벗겨 수세미로 박박 씻어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동설한의 시리게 추운 밤.

나는 부엌으로 뛰어가 꽁꽁 언 세숫대야의 얼음을 깨고 머리를 담갔다.

순간 머리의 가려움은 시림의 아픔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머리 감기에서 이런 개운함의 극치를 맛보다니!




2박의 캠핑을 마치고 샤워를 한다

기억 속의 시리도록 아린 개운함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피의 개운함이 있었다

뽀송하니, 여전히 많은 숱의 머리칼을 보고 있자니 그 시절. 최소한의 씻기가 준 선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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