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

이우고등학교 진로교과포럼


이우학교의 교과포럼은 하나의 교과를 가지고 삼주체의 토론이 이루어지게 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체 진행은 학부모교과지원위가 도맡고, 해당교과의 교사는 수업을 설계한 이유와 이 수업에서 던지고자 하는 중요한 질문을 준비합니다. 수업이 말잔치가 아니라 의미를 담고 구현되고 있는지를 학생교과지원위의 목소리로 피드백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소통과 협의를 통해 구현됩니다. 이우학교는 하나의 수업이 단일 학교에서만 구성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완성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학교교육공동체’의 중요성이 강조된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그간 학교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만들어가는 공간이 되어야한다는 합의도 쉽게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공간에서 학생은 수업의 객체가 되고, 학부모는 조력자로 해석된다. 이우학교 역시 이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중요한 가치도 자칫하면 놓쳐지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이들을 배움의 주인공으로 만들 것인가?’, ‘학부모와 협업하기 위해서 학교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할까?’를 끊임없이 물어야만 작은 변화가 이뤄지고, 답을 찾을 수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코로나시대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애쓰지 않아도 이뤄졌던 많은 것들이 무던히 힘을 쏟아야만 겨우 구현되었다. 경험에 의존하거나 기존의 관성대로 움직이는 것의 한계는 그보다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구성된 교육과정을 넘나들며 구현되었던 느슨한 관계 속에서의 배움은 보다 정교한 틀을 필요로 했다. 그렇게 교육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과정을 거치며 3주체는 다시금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배움이란 무엇일까?’, ‘왜 배우는가?’라는 거대 질문을 만난 각 주체들이 각자만의 해석을 담아 만나는 자리는 일면 필연적이기도 했다. 이것이 올해 교과포럼의 시작이었다.






교과 포럼을 향한 첫 발걸음 


학부모 교과지원위를 만나는 첫 자리에서 위원들께서는 ‘교과포럼은 왜 해야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으며, 현재는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말로 현재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해야 되어서가 아니라 학교와 학부모의 통로로서 의미 있는 연결짓기를 잘 하기 위해서라는 점도 덧붙였다. 작년에 이뤄진 학교 평가에서 학부모의 학교 지향점에 대한 이해가 다른 주체에 비해 다소 낮다는 평가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교과포럼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듣기보다는 협의하고 내면화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목표를 두었다. 이우학교 내의 모든 교과가 학교의 정체성을 담고 있을 것이나 그 중에서도 진로교과는 그 자체로 학교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것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1부에는 중/고 교육과정의 전체적인 틀을 함께 공유하고, 2부에서는 학교급별로 소회의실에 나누어 들어가서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실현사례와 질의응답을 나누기로 설계했다.


큰 틀에서 합의를 거친 후에는 주체별로 나뉘어 고민을 시작했다. 교사회에서는 배움의 의미를 정의하고, 실제 진행되는 교육과정의 위계(직접교육과정&간접교육과정)를 정리하며 의미를 재확인했다. 더불어 학부모 교과위에서는 지금 당장의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각 개인이 가진 정보의 격차와 연결감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감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이와 별도로 학생 교과위에서는 본인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해석해보았다. 모든 교육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경험 속에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짓기보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훨씬 더 유효하다. 그것이 소통에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고, 현재 지점에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과위에서 제작한 교과퍼럼 포스터와 진로에 대한 각 학년 학부모님들의 생각을 정리한 워드 클라우드.  중고급별, 학년별 차이가 분명하다.






교과포럼 진행 과정 


하루 종일 비가 내렸던 4월 12일 저녁, 온라인으로 교과포럼이 열렸다. 교사, 학부모, 학생까지 200명이 넘는 참석자가 모였다. ‘벗, 그대를 환대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감사의 인사가 채팅창에 가득 채워지며 온라인 공간에서도 학부모와 학교가 연결되어있음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


자신의 배움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배움터를 설계해나가는 진로교과의 특성상 직접 교육과정 못지않게 간접교육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운영은 각 학년팀에서 하더라도 실행과정에서 의미와 가치가 상실되지 않도록 큰 틀에서 바라보는 것도 진로교과가 할 수 있는 몫이다. 동시에 학교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우고, 그 세계와 연결 짓는 다리 역할이 되어주는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만남의 범위가 학교-마을-그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넓어지는 자극은 리얼월드를 마주하게 한다.




진로교과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는 장면이다. 이우학교 진로교육과정은 직접교육과정과 간접교육과정으로 나뉜다.




왜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을 상상하였는지 두 분 선생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된다. 배움이 진짜 가야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그 방향을 위해서 어떤 과정을 밟아나가는지가 다각도로 설명되면서 각자의 모호함이 발견되기도, 해소되기도 한다. 모르는 것은 묻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이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노력들이 어느 순간에는 안전한 공간으로 구현된다.


교과포럼 이후에도 학부모교과지원위에서는 참여하지 못한 구성원들을 위해 포럼내용을 정리하고 미처 답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담당교사에게 물어 공유한다. 단순히 답을 찾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의 역할을 고려한 구성을 주체적으로 설계한다. 교과포럼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이 하나의 주체가 일방적으로 구현될 수 없음이 구석구석에서 드러난다. 배움이라는 주제 안에서 협업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 학교교육공동체의 몫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무엇이 아이들을-학교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을- 배움의 주인공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비가 오는 월요일 저녁 8시, 그 때의 뜨거움을 남긴다. 


이우학교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떠오르는 질문들을 나누고, 답변을 곱씹으며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100여분이 남긴 후기 중에서도 몇 가지만 공유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그 어떤 해석보다도 살아있는 말 자체의 온기와 힘을 믿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은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나 타인이 정한 시선의 어른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찾아낸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우 안에서 맘껏 방황하고 시도해보고 실패하기를~~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우 학교에서 어떤 어른이 될지 방향을 찾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아이들 두발자전거 가르쳐줄 때 뒤에서 안장을 세게 잡아 주면, 아이는 넘어지지 않고 잘 가는 것 같지만, 배우는 건 늦어지지요. 아이가 다칠까봐 걱정하는 마음과 빨리 스스로 중심을 잡길 바라는 맘이 계속 갈등이었지요. 우리 아이들의 진로 문제도 그런 것 같아요~”
“인생은 갈지자로 걷는다는 말씀에 크게 위로 됩니다. 그리울 정도로 바쁜 아이를 기다리는 게 어려워도, 걷는 게 위태로워 보여도 아이의 앞길을 막아서는 부모가 되지 말아야지.. 손잡고 끌고 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말하기보다 '다양한 삶을 보고 얼마나 다양한 삶이 가능한지를 볼 수 있게. 생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주라는 말씀이 내 삶에서 주인 되는 진로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실현 중이신 이우학교 진로선생님 이야기



“교과를 바꾸는 물리적인 전환의 경험은 교과안으로 매몰되기 쉬운 한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김주현선생님
“나는 지금도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학교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장기혁 선생님



이우학교에는 이력이 남다른 두 분의 진로 선생님이 계신다. 진로교사 이전에 정보교사와 철학교사였던 과거가 바로 그것이다. 철학교사였던 장기혁 선생님은 과거 철학교과포럼에서 “지금은 진로교사가 되었지만, 진로를 바라볼 때 철학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세계를 안내하는 김주현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맡은 역할과 살아온 환경은 그 사람에게 남기 마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두 선생님이 멈추지 않고 기존의 경험을 안고 있는 채로 도전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직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진로수업은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야한다. 그것이 이전 세대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진로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책상 앞에 앉아서 기존의 질서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상상력을 얻어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진로수업은 ‘실제 세상과 만나고, 거기에서 알게 된 나만의 특징을 기반으로 다음 배움터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우학교 진로수업은 이를 목표로 수업이 구상된다. 특정 직업을 목적지로 삼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 검색하고 준비하는 것보다는 나의 특징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한다. 이것저것을 시도해보며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들의 시선에서 보기에 탐탁지 않을 수 있다. 어설픔은 배우는 자의 특권이다. 교사와 부모는 계속 해서 그들의 실패를 응원해주어야 한다. “실패해도 괜찮아.”, “어설퍼도 괜찮아.”라는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를 살펴보아야만 오늘의 경험을 재해석하여 내일은 또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걷는 길은 갈지자의 행보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정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본인에게 오는 관심과 자극의 영역을 따라 걷다보면 갈지자의 영역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그러했듯 아이들이 걷는 그 길목에서는 당연히 답을 찾기 어렵다.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시간이 지나 또 다른 경험에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필연적으로 답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도전과 경험들이 의미 있게 연결되도록 교사의 의미 있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동시에 하나의 경험에 매몰되어 더 확장된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야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삶은 계획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육현장에서 마치 정해진 답이 있는 것처럼 계획세우기를 강조한다.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획을 실현해내라고 채찍질한다. 그런 방법으로는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넉넉한 마음으로 찾을 수가 없다. 교육과 삶이 괴리감을 갖지 않고 연결짓는 것이 장기혁, 김주현 두 진로선생님께서 진로수업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진로수업은 삶, 그 자체


무엇인가를 시도해보기 위해서는 가볍게 도전하는 프로토타입이 필요하다. 시도를 해본 뒤에라야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무엇이 더 필요한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렇기 위해서 프로토타입은 가벼워야하고, 정을 주지 말아야 한다.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 그 다음이 있다. 최근 두 분 선생님은 ‘실험과 상상실을 수학수업에 용이한 교실환경으로 구현하기’라는 도전을 시도했다. ‘어떻게 하면 하나의 교실을 다양하게 쓸 수 있을까?’라는 탐구질문을 가지고 판넬을 자르고 바퀴를 달아 이동이 가능한 칠판을 만들었다. 뚝딱뚝딱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본 이후에 흔들리지 않는 칠판을 위해서 어떤 각목이 필요하고,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확정지었다.


상상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구현하는 것은 기능을 뛰어넘는 일이다. 공간을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상상을 더한다는 것은 인식의 다양화를 만들어낸다. 공간에 한정하지 않고 사고의 확산까지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말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또 다른 창조와 혁신을 추동한다.




[실험과 상상실에 설치된 수학 칠판] 화이트보드는 떼고 붙이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수학수업 외에 다른 수업에서도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하다.






어른들은 쉽게 걱정한다. ‘요즘 아이들은 배우려 들지 않는다’고. 아이들은 정말로 배우는 것을 싫어할까?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줄 동지가 곁에 있다면 어떨까? 세상의 불안에서 우리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서는 것, 교사와 부모의 불안을 아이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스스로 해석해내는 것, 어설픔을 기다리는 것, 이 모든 것이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우리의 몫이다.




작가의 이전글 존엄으로서의 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