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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Feb 12. 2023

우리가 열광했던 홍콩 누아르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의 기억

변변한 오락거리가 별로 없던 80년대 중고등학생 시절, 우리는 시험이 끝나면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그때는 운이 좋으면 영화 한 편 값으로 두 편을 볼 수도 있었는데,

상영관이 하나밖에 없는 동네 영화관에서 영화 두 편을 같은 시기에 상영하는 동시상영관 덕분이었다.

요즘처럼 멀티플렉스가 없던 시절, 극장에 상영관은 1개인데 손님들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기 위해 서로 다른 장르의 2편의 영화를 시간대별로 번갈아 상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영화가 끝난 후에 다음 영화 손님이 적고 극장 직원이 단속을 하지 않는 운 좋은 날에는 그 자리에 계속 앉아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영화는 우리에게 소중한 오락거리였고,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다음날 학교에서 서로 영화 얘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그때 우리가 열광했던 영화는 할리우드영화보다 홍콩영화였다.


80년대는 홍콩영화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그 시절 홍콩 영화배우들은 요즘 MZ세대에게 BTS 만큼이나 우리에게 대단한 존재였다.

70년대 이소룡으로 대표되던 무술영화는 80년대에 코믹 쿵후로 이어지며 성룡, 홍금보를 대스타로 만들었고, 80년대 후반에는 주먹 대신 권총을 들고 싸우는 누아르가 대세였다.

내가 중고생이었던 시절이 바로 홍콩누아르가 사춘기 남자애들을 지배하던 때였다. 누아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 괜히 심각하고 친구간의 의리에 눈뜬 중고생들의 정서와 딱 맞아떨어져서였을까?


영웅본색(1986)

청소년들을 본격적으로 사로잡은 누아르 영화는 주윤발, 적룡, 장국영 주연의 영웅본색이다.

조직에서 자신을 가르치고 보스 자리까지 양보한 선배를 배신한 의리를 모르는 악한 놈을 '악은 악의 수법으로 징벌'하는 통쾌한 결말의 영화다.

특히, 동생 역을 맡은 장국영이 직접 부른 OST가 히트를 치면서 영화가 더 알려지게 되었고,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악당들을 처단하는 주윤발은 대한민국 사춘기 소년들의 영웅이 되었다.

주윤발이 영화에서 성냥개비를 물고 나오면 다음날 전국의 중학생들이 입에 성냥개비를 물고 다니다가 선생님께 혼나고,

접이식칼을 멋들어지게 돌리는 장면을 따라 하다가 손을 베기 일쑤였으며,

아침에 일어나 부시시한 얼굴로 날계란 10개를 컵에 넣어 무심하게 원샷하는 장면을 따라 하다가 배탈이 나기도 했다.



첩혈쌍웅(1989)

영웅본색의 대를 이은 영화가 주윤발, 이수현, 엽천문 주연의 첩혈쌍웅이다.

실수로 젊은 여가수를 실명하게 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킬러와 그를 쫓는 형사가 우정을 쌓게 되고 선혈 낭자한 의리를 보여주는 홍콩 누아르의 정점을 보여주는 영화다.

당시 고3이었지만 아직 어린 영혼이었던 우리는 극장에 가거나 비디오로 영화를 보았고, 수업 후 쉬는 시간마다 주인공들의 명대사를 따라 하며 감탄하곤 했다.


"개처럼 죽고 싶지는 않아. 그런데, 총알이 없어."

"개처럼 죽게 될 줄은 몰랐어. 죽을 때는 좀 멋지게 죽고 싶었는데."

"개같이 살기보다는 영웅처럼 죽고 싶다."


사실, 성인이 된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그 당시 우리에겐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대사가 명대사였다.

그래서 대입 학력고사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던 우리에게 이 영화는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몰입할 수 있는 도피처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킬러와 경찰로 서로 맞서는 아쏭(주윤발)과 이응(이수현)
쫓고 쫓기는 적수였지만 결국 찐한 동료가 되는 아쏭과 이응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홍콩영화가 빛을 보게 된 것은 1949년에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산업을 억압하는 공산당과 그에 못지않게 예술을 억압한 대만의 장제스를 피해 본토의 유명 배우들과 영화제작사 등 중화권의 영화 인프라가 영국령이었던 홍콩으로 몰려들면서 홍콩은 중화권 영화의 메카가 되었다.

하지만, 홍콩 반환을 앞두고 90년대초부터 홍콩의 주요 인물들과 인프라가 해외로 이주하였고, 97년에 홍콩이 중국에 완전히 반환되면서 홍콩영화의 맥은 사실상 끊어진 셈이다.


전세계가 K-Culture에 열광하는 요즘 나는 다시 80년대 홍콩영화를 보고 있다.

화면은 촌스럽고 가족들은 옛날 영화 본다고 무시하지만,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나서일까 감동은 그대로다.



<영웅본색 OST - 장국영>

<영웅본색2 OST - 장국영>


<첩혈쌍웅 OST - 엽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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