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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May 23. 2023

교복 자율화 세대의 추억

롤러장과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

교복 자율화

전국의 모든 중고생이 교복과 두발 규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시절이 있었으니 1982년 두발 자율화에 이어 교복 자율화가 시행된 1983년부터 교복이 부활한 1986년까지 3년간이었다.


교복 자율화 이전에는 전국의 중고생이 동일한 디자인으로 남학생은 가쿠란, 여학생은 세일러복을 착용했으나,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잠시 찾아온 '서울의 봄'으로 시민의식이 높아지며 획일적인 교복이 학생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무시한다는 지적과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1982년 일주일에 한 번 사복을 허용한데 이어 1983년에는 교복을 전혀 입지 않는 교복 자율화와 가방 디자인 자율화가 시행되었다.


갑자기 찾아온 두발 자율화와 교복 자율화로 학생들의 일탈이 급증하고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 조성 등의 사회 문제가 커지자 1986년에 학교장 재량에 의해 교복 디자인과 착용 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교복이 부활했으나, 1991년까지 교복을 채택한 학교가 전체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고, 그 시기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는 가장 자유롭고 일탈에 너그러웠던 시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무렵은 지금보다 가부장적 문화와 유교적 엄숙주의가 심해서 청소년의 일탈에 대해 더욱 부정적이었으나,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학생 운동을 막는데 경찰력을 집중하느라 청소년 일탈을 단속할 여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데모만 하지 말고 차라리 마음껏 놀아라 하는 분위기였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가방,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한 중고생들
획일적인 교복은 83년에 폐지되었지만, 교련 군사교육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93년에야 폐지되었다.
영화 ‘써니’와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들이 교복을 입지 않은 이유는 그들도 교복 자율화 세대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해방구, 롤러장

그 시절 청소년들의 해방구는 롤러장이었다.

1980년대 그곳은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공간 이상이었다. 그 당시 잘 나가는 남학생들은 두발 자율화로 성인들과 똑같이 기른 머리에 무스를 한껏 발라 올리고 여학생들은 진한 화장에 예쁜 옷으로 치장을 하고 모이는 곳이 롤러장이었다.


당시에는 남녀공학이 흔하지 않았고, 남녀가 한 반에서 공부하는 남녀합반은 1984년에 반포고등학교에서 처음 시행되었으니 남녀 학생들이 한자리에 함께 할 기회가 없었기에 롤러장은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는 신세계였다.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롤러 좀 탄다 하는 남학생들은 뒤로 타기 신공을 뽐냈고, 잔뜩 치장을 한 여학생들이 그런 남학생들을 바라보면서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치다가 서로 친해져서 콜라를 마시며 어울리곤 했는데, 간혹 도가 지나쳐 술과 담배를 하는 학생들을 단속하느라 주변 학교의 학생주임 선생님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롤러장 패션은 이성에게 잘 보이려고 어려운 동작들을 하느라 자주 넘어지기 때문에 청바지를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가끔 쎄보이는 누나들이 아슬아슬한 스커트 차림으로 능숙하게 타곤 했는데, 대부분 무서운 일진 형님들의 여친이거나 혹은 일진 누님들이었다.


롤러장 노래

롤러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나는 음악이었다.


London Boys - I'm gonna give my heart / Harlem Desire

Modern Talking -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David Lyme - Bambina

Bonie M - Happy Song / Sunny

Joy - Touch By Touch


등이 대표적이었는데,

특히, Joy의 Touch By Touch가 흘러나오면 롤러를 타던 학생들이 잠시 멈추고 떼창을 하는 장관이 연출되곤 했다.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와 공테이프

80년대에는 아직 CD도 보급되기 전이라 지금은 보기 힘든 (레코드판이라 부르던) LP판이나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었는데, 좀 논다 하는 학생들은 커다란 스테레오 스피커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두 개 달린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어깨에 메고 댄스 음악을 크게 틀고 길거리를 활보하며 여학생이 지나갈 때마다 어줍잖은 디스코나 브레이크댄스를 뽐내곤 했다.

한번 사면 10년간 잔고장 없기로 유명했던 금성사의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

수학여행에서도 진가를 발휘하는 더블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는 한쪽에서 플레이되는 음악을 다른 한쪽에서 녹음할 수 있도록 고안된,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는데, 공테이프에 마음을 담은 노래를 녹음해서 호감 있는 이성친구에게 선물하는 당시의 문화를 반영한 제품이었던 것 깉다. 더블데크가 없는 학생들은 공테이프를 준비하고 있다가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녹음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가끔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광고가 흘러나오면 야속한 DJ를 탓하며 녹음된 노래를 지워야 했기에 더블데크는 당시 청소년들의 최애장품 중 하나였다.




어쩌면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가 정신적으로 가장 여유로운 시기를 보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서슬퍼런 군사 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에 젊음을 바친 세대이기도 하다.

그때 우리가 학생운동에 진지했던 것은 스스로 그것이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었고, 금전적인 보상 때문이 아니라 옳은 것을 위해 젊음을 바치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낭만 아닐까?


그러나, 중학교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기성세대가 재단해 놓은 틀에 갖혀 정신적인 여유를 갖기 힘든 요즘 학생들이 보기에 그 시절 학생운동은 낭만을 넘어 사치로 보일지도 모른다.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청소년기와 캠퍼스의 낭만을 누렸던 우리 세대는 왜 자녀 세대를 이리도 힘들게 만든 것일까..



<Joy - Touch By Touch>

<London Boys - I’m gonna give my heart>

<Modern Talking -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Bonie M - Happy Song>

<David Lyme - Bamb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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