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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엄마의 심정

by 꿈동아빠 구재학

집 떠나 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 절 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대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삼일 만에 군대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3학년부터 ROTC 학군장교후보생으로 2년간의 고생 끝에 소위 임관식을 앞두고 더플백을 메고 문무대로 가던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께 큰절을 했다. 설날도 아닌데, 세배도 아닌 큰절을 한 것은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그보다 왠지 절을 하고 엄마 얼굴을 보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큰절을 대충 서둘러 마치고 뛰쳐나가 듯 집을 나섰다.

이틀 후 임관식 때 꽃 사들고 오실텐데, 만리타향으로 떠나는 심정으로, 조심히 잘 가라는 부모님의 인사를 뒤로 하고 그렇게 서둘러 집을 뛰쳐나갔다.




법인장 파견 발령을 받아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부모님 댁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서울로 자주 나오기는 힘들 것 같아서 아이들 얼굴이라도 크게 보여드리려고 아이패드를 사드리고, 아들이 영상통화를 걸면 어떻게 받는지 열 번도 넘게 알려드렸다.

건강히 잘 지낼 거니 걱정 말라고, 부모님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차에 올라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차마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애들 앞에서 큰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아서.. 그리고는 백미러로 보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고 계신 엄마를..




엄마가 췌장암 말기라며 울며 전화하는 작은누나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서울로 와서 엄마 곁에서 열흘을 보냈을 때, 엄마는 회사를 오래 비우면 안 된다며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아이들이 방학을 해서 할머니를 뵈러 왔을 때 엄마는 애들 데리고 어서 가라고 하셨다. 당신께는 차마 말기암이라고 말할 수 없었기에 엄마는 본인이 곧 퇴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도 성화를 부리셔서, 그러다 상태가 더 악화될까 두려워 하는 수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돌아가는 내내 한숨도 못 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져 있는 사이에 엄마가 위독해지셨고 그렇게 돌아가셨다.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해 엄마의 임종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엄마는 마지막 순간에 막내아들을 여러 번 찾으셨다고 한다.

태평양 건너 멀리 떨어져 보기도 힘들었던 막내아들이 회사에서 미움받을까 봐 떠밀어 보내셨던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마지막 순간에 그 아들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심정은 어땠을까.




아이들을 키워보니 알 것 같다.

자식은 어렸을 때나 다 컸을 때나 항상 눈에 밟히고 걱정된다는 것을..

엄마가 우리 사남매 걱정을 하실 때마다 다 큰 자식들을 왜 걱정하냐고, 이제 마음 편히 사시라고 심드렁하게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그게 엄마의 심정이란 걸..

그런 아들이 뒷모습을 보이고 멀리 떠나갈 때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 이등병의 편지 - 김광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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