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스에서 솔로로, 그리고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1995년 11월 20일, 한국 대중음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듀스의 김성재가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불과 스물세 살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바로 전날 솔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11월 19일 SBS '생방송 TV 가요20'에서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 '말하자면'을 부른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나는 평소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우연히 그의 솔로 데뷔 무대를 생방송으로 보았다.
듀스 활동을 할 때는 주로 이현도가 예능이나 인터뷰에 나서고 김성재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어서, 나에게는 '듀스의 보컬' 정도로만 인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솔로로 데뷔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하지만 무대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노래도 좋았고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어서 '솔로로도 성공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그가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무대를 떠난 것만 같았다.
1990년대 초반, 세계 음악계는 급격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이 주류를 점령했고, 동시에 힙합과 알앤비가 결합한 '뉴 잭 스윙'(리듬감 있는 댄스 음악)이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런 음악들은 기존의 완벽하게 포장된 Pop과는 달리, 보다 날것의 감정과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한국 가요계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돌풍을 일으키며 기존의 트로트와 발라드 중심 시장에 균열을 냈다. 댄스 음악과 랩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고, 10대와 20대들은 열광했다. 음반사들도 이 변화를 놓칠 수 없었다.
그런 흐름 속에서 1993년 4월, 듀스(DEUX)가 등장했다.
김성재와 이현도, 두 청년이 만들어낸 음악은 서태지와는 또 다른 방향이었다. 힙합과 알앤비를 결합한 뉴잭스윙 장르로, 세련되고 감각적이었다. 무엇보다 김성재의 부드럽고 호소력 있는 보컬과 이현도의 랩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독특했다.
데뷔곡 '나를 돌아봐'는 경쾌한 리듬과 강렬한 퍼포먼스로 무대를 압도하며 곧바로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나를 돌아봐. 나는 지금, 널 그리며 서 있어"라는 가사는 당시 청춘들의 간절함을 대변했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파워 넘치는 댄스는 그 마음을 더욱 뜨겁게 전달했다.
듀스는 데뷔와 동시에 시대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김성재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일본 지사 발령으로 가족과 함께 도쿄로 건너가 중학교까지 마쳤다. 그 시절 일본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특별한 감각을 안겨주었다. 일본의 정교한 팝 음악, 세련된 패션, 그리고 완성도 높은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성재는 상문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기서 그는 평생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가 될 이현도를 만나게 된다. 김성재는 입시 위주의 억압적인 교육 환경에 힘들어 했지만, 노래와 미술에 꽤 재능을 보였다. 무엇보다 패션과 스타일링에 뛰어난 감각을 보였다.
이현도와는 금세 친해졌고, 음악에 대한 꿈도 함께 키워나갔다. 이현도는 창작에, 김성재는 표현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이 듀스라는 그룹의 시작이었다.
듀스의 성공은 폭발적이었다.
1집 '나를 돌아봐'부터 3집 '굴레를 벗어나'까지 연속으로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최고의 아이돌이 되었다. 1993년 2집 '듀시즘(DEUXISM)'과 1995년 3집 '포스 듀스(Force DEUX)'는 지금도 1990년대 명반으로 꼽힌다.
특히 '여름 안에서'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름이면 라디오에서 빠지지 않는, 세대를 아우르는 여름의 대표곡이 되었다. 김성재의 목소리에는 젊음의 열정과 함께 묘한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아마도 일본에서의 이방인 생활, 그리고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야 했던 경험이 그런 감정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듀스에서 멤버들의 역할은 명확했다. 이현도가 모든 곡의 작사·작곡·편곡을 담당했다면, 김성재는 그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는 보컬을 맡았다. 동시에 그룹의 비주얼 디렉터 역할도 했다. 의상, 헤어스타일, 안무에 이르기까지 듀스의 이미지 전반을 김성재가 책임졌다.
하지만 그 성공 뒤에는 미묘한 갈등도 있었다. 음악적 주도권이 이현도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김성재는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
1995년, 듀스는 해체를 발표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각자의 음악적 개성을 살려나가기 위해서"였다. 김성재는 드디어 자신만의 음악을 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의 첫 솔로 앨범 '말하자면'의 전곡 프로듀싱은 이현도가 맡았다. 듀스는 해체했지만, 둘의 우정과 음악적 파트너십은 여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성재 개인의 색깔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말하자면'을 비롯해 '너를 위해',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 등이 수록되었다. 특히 '마지막 노래를 들어줘'라는 곡은 그의 비극적 사건 이후 마치 죽음을 암시한 것처럼 느껴져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솔로 데뷔를 앞둔 김성재는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에 차 있었다. 드디어 김성재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1995년 11월 19일, 김성재는 솔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타이틀곡 '말하자면'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뉴 잭 스윙의 리듬을 한국적으로 소화한 곡이었다. 세련된 비트와 감각적인 멜로디, 그리고 여유 있는 보컬은 그가 음악적으로도 성숙했음을 보여주었다.
무대 위의 김성재는 흥분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커다란 글러브를 끼고 역동적인 춤을 추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듀스 시절과는 또 다른, 보다 성숙해진 엔터테이너의 모습이었다. 혼자 서는 첫 무대였지만 당당했고, 노래도 훌륭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다음 날 새벽,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1995년 11월 20일 새벽, 서울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김성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솔로 데뷔 무대를 가진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부검 결과 그의 몸에서는 무려 28곳의 주사 자국과 함께 동물 마취제 졸레틸이 검출되었다. 특히 투약 부위가 오른팔이었는데, 오른손잡이였던 그가 스스로 주사를 놓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혹은 더욱 커졌다.
수사 과정은 허술했다. 현장 보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부검도 다음 날에서야 진행됐다. 경찰은 처음엔 ‘청장년 급사증후군’으로 발표했다가 보름 뒤에야 마취제 검출 사실을 공개했다. 결정적 증거가 될 호텔 CCTV는 이미 덮어쓰기로 소실되었고, 함께 무대에 섰던 외국인 댄서들은 곧바로 출국해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사건을 규명할 단서는 남지 않았다.
유력한 용의자로 기소된 여자친구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 대형 로펌의 전관 변호사로 변호인단이 교체된 후, 법원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언론은 연일 추측과 소문을 쏟아냈지만, 증거는 소실되었고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김성재의 죽음은 그렇게 한국 연예계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김성재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는 듀스로 잘 알려졌지만, 김성재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한 시간은 불과 하루였다.
데뷔 후 단 하루를 활동하고 이렇게 오래 기억되는 아티스트가 또 있었을까?
당시 청춘들에게 듀스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청년들의 목소리였고, 사랑과 우정, 꿈과 좌절을 함께 나누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듀스의 이른 해체만으로도 아쉬웠는데, 김성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 세대에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는 더욱 깊게 각인되었다. '나를 돌아봐'는 여전히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이고, '굴레를 벗어나'에서 외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지금도 젊은 세대에게 울림을 준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여름 안에서〉, 그리고 마지막 무대에서 남긴〈말하자면〉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가 더 오래 노래했다면,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
그 물음은 아직도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아쉬움이 김성재를 아직도 기억하게 만든다.
김성재가 떠난 지 불과 몇 달 후, 또 다른 젊은 가수가 세상을 떠났다.
'내 눈물 모아'의 서지원, 그 역시 스물네 살이었다. 1990년대는 왜 이토록 많은 재능 있는 청춘들을 잃어야 했을까. 다음 글에서는 서지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나무위키 - 듀스(음악그룹), 김성재, 이현
나무위키 - 김성재 의문사 사건
조선일보 - “배정훈 PD ‘SBS에서 못 나간 ‘그알’ 김성재 편, OTT로라도…”
MBC 다큐플렉스 - "미스터리의 기원 - 김성재 변사사건, 치과의사 모녀 피살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