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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s Jan 01. 2024

3) '비틀비틀' 그대는 주취자

3) 비틀비틀  그대는 주취자     


9월 가을 초입 도시의 밤,

푹푹 찌는 듯한 여름이 우리 곁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청량한 가을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거리는 사람들의 밝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가득하다. 

태양은 서쪽 하늘로 넘어가며 붉은 웃음을 보이고 내일 다시 보자고 인사한다.

이윽고 도시의 밤은 시작되고 경찰관의 심장은 빨라진다.     




112 신고 No. 0921 [남성이 도로에 누워있다.]


젊은 남성 주취자가 인도와 차로를 걸쳐 누워있었다. 지나가는 차에 치여 다칠 수 있는 상황이다. 나는 술에 취한 사람을 인도에 올려놓고 몸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내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뭐야 짭새 새끼야! 꺼져!" 그러고는 다시 도로 방향으로 걸어간다. 나는 다시 그를 제지하였다. 그리고 또 내게 욕설을 뱉는다.


나는 '될 대로 돼라.'라는 마음으로 그를 내버려 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경찰관의 현실이다.

술에 취해 도로에 뛰어든다거나, 사고가 생기거나, 발을 헛디뎌 다치거나, 추운 날씨에 동사하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경찰관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참 욕설을 듣고 있는 중에 때마침 주취자의 휴대전화기 벨이 울렸다. 나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도 주취자의 가족이다.

상황 설명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술 취한 남자의 아내가 현장에 도착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화냈다. "이 화상아!"  


이런 소모적 현장은 경찰관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이때 중요한 신고가 접수되면 늦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술에 취한 사람을 처리하기 위한 법률 중 현장에서 써먹을 만한 것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술 취한 사람 보호에 관한 신고는 피하고 싶다. 경찰력 낭비의 큰 원인 중 하나다. 

'술 취함'에 대한 문제가 속히 해결되었으면 한다.




112 신고 No. 1010 [손님이 행패 한다.]


현장은 김치찌개 음식점이다.

술 취한 60대 남성이 식당의 여성 종사자에게 욕하고 있었다.

나는 좁은 식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 남성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다가갔다.

"경찰관입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술에 취한 남성은 "경찰관이 왜 여기에 있어! 아들에게 연락할 수 없다고! 번호도 기억나지 않아!" 

남성은 강원도에서 아들을 찾아왔는데 휴대전화기를 집에 두고 와서 아들의 전화번호를 알 수 없다는 것이.


그는 식당 업주 보고 아들을 찾아내라 소리쳤.

('아 난감하다.' 보통 사람의 머리는 이해할 수 없는 술에 취한 사람의 심오한 세계.)


나는 만취한 남성에게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주위를 돌렸다. 그러자 갑자기 아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생각났다며 나에게 알려주었다.     


아들은 비교적 차분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와 20년 동안 왕래가 없었고, 아버지는 술만 마셨으며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았고 결국 가족 구성원이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전화 통화를 마친 후 만취한 노신사에게 아들의 뜻을 전달하였다.


만취자는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아줌마! 여기 소주 가져와! 씨발, 세상이 X 같아!"라며 원색적인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 정도 되면 경찰관으로서 엄격하게 해야 한다.

나는 음주소란 행위가 형사입건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강하고 명료하게 말했. 그러자 그는 약간 움츠리는 모습으로 내게 경찰차로 강원도에 있는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이어서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세금으로 월급 받는 경찰공무원이니 본인의 요구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다른 112 신고가 몰려와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그를 음식점에서 내보내고 대중교통으로 귀가하라고 권했. 그는 거절하며 "내가 알아서 간다!"라고 소리치고 자기 맘대로 걸어갔다.




112 신고 No. 3023 [지나가는 사람이 시비]     


이곳은 최근 신도시의 중심 상업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오락을 즐기는 이다. 그런데 만취한 중년 남성이 이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하고 시비를 걸고 있었다.


나는 그의 행위를 제지하고, 다친 곳은 없는지, 집은 어디인지, 가족과 연락할 수 있는지 등을 질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취기가 있는 사람은 경찰관에게 반감을 품고 답변을 거부한다.     

이 중년 남성은 한차례 내게 욕설을 퍼붓고는 자신의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넘어졌다. 음주 후 자전거를 타고 가는 행위는 음주운전에 해당한다.     


나는 아이에게 타이르듯 이야기했다. 이러한 행위는 음주운전에 해당하고 타인과 본인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자전거는 잠금장치를 이용하여 길가에 있는 벤치 기둥에 묶었다.     

그는 벤치 앉아있다가 귀가하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번 주의를 주고 또 다른 112 신고를 처리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스치듯 무심하게 한 번 쳐다보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왠지 모르게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112 신고 No. 3160 [여성 세 명이 행패 한다.]     


편의점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서 중년 여성으로 보이는 3명이 술을 나누어 마시고 편의점 영업자와 시비가 발생한 것이다.     

여성 3명은 편의점 영업자의 응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말다툼한 것으로 "동네 장사 똑바로 해라."라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다.

편의점 영업자가 늦었으니 귀가하라고 말한 것이 기분 나빠서 항의했다는 것이다.    

 

'아, 이게 무슨......'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아! 미친 것들아!'하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없다.

나는 대한민국 경찰관이다.


술 취한 여성들을 어르고 달래 귀가시켰다.

서쪽으로 떠났던 태양이 동쪽에서 그 얼굴을 보일 때까지 술과 관련된 112 신고는 계속되었다. 




우리나라 범죄 발생은 술과 관련된 것이 많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강력 범죄의 30%가 주취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고 전체 112 신고 중 약 5%가 주취자신고에 해당한다.     


문제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경찰관이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과하다.'라는 것이다. 이때 급히 경찰력이 필요한 112 신고가 접수되면 대응이 어렵게 된다. 왜냐하면 현실은 영화처럼 경찰관이 필요할 때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이런 일이 있었다.

주취자가 "집까지 데려달라.", "경찰관이 불친절하다."라는 등 억지 주장과 항의를 연이어했다.

그때 성추행 관련 112 신고가 차로 약 5분 거리에서 발생하였고 바로 현장으로 이동하지 못했다. 결국 추행범은 발견치 못했고 피해 여성은 즉시 경찰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     


경찰 현장은 늘 경찰관 수가 부족하다. 그리고 경찰관은 로봇이 아니다. 신고 하나하나 체력, 감정, 법률적용, 사안 판단 등 고도의 집중과 긴장 상태를 유지한 채 짧게는 30, 길게는 두세 시간 동안 경찰 활동을 한다. 여기에 더하여 사건화 되어 형사소송법에 따라 입건 절차를 진행하게 되면 1시간, 2시간이 더 소비된다. 경찰관은 체력, 정신작용, 지식을 모두 소비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다른 112 신고 처리를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대한민국의 치안은 이렇게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술이 나쁘다고만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인류문화에서 술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필자도 술을 즐긴다. 하지만 술 마시는 자유를 넘어 방종에 가까워지게 되면 거리의 쓰레기와 진배없.     


세계 각국은 그 특성에 맞게 주취자 관련 법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명정자 규제법', 미국은 '통합알코올중독 및 주취자치료법', 프랑스의' 공중위생법', 독일의 '통일형사법'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주취자 관련 규정이 있다. 우리나라는 술에 취한 사람을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할 객체로 보고 있다. 그 결과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하였고 공권력 경시 풍조를 가져왔다.     


술에 취한 사람을 보호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지역경찰관서에는 민원인, 피의자 등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술에 취한 사람을 보호할 경찰 인원은 없다. 그리고 전문 의학지식이 없는 경찰은 술에 취한 사람의 신체 상황을 알 수 없다. 만일 그에게 신체적 문제가 생긴다면 경찰이 사회적 비난과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사실, 술에 취한 사람은 유해 약물 중독자로 간주되어 보건복지부나 119 구급대가 주무부서. 그러나 보건복지부현장에 술에 취한 사람을 대처한 경험이 없어 제대로 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119 구급대도 경찰과 마찬가지로 인원 부족, 신병 처리에 대한 실질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정, 경찰청에서는 권역별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설치했다. 하지만 주취자가 의료센터 문턱을 넘는 요건이 까다로워 이용하는 횟수 자체가 적다. 즉 현장에서는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한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관공서 주취 소란죄, 음주운전 처벌, 음주 측정 거부 시 처벌, 술에 취한 사람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 법적 제재가 과거보다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제한적 수단이다.     


주취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찰관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 국민, 언론 등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나는 경찰관으로서

선량한 시민과 급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공공재는 유한하다. 주취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지금보다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A의 자유가 B, C, D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제재가 필요한 것이지 보호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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