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출근길

메트로 읽으면서 출근 해본 사람?

by 스테파니

출퇴근 왕복 세시간은 고통이다. 첫 직장 시절 나의 출근길은 올림픽공원역에서부터 상암DMC역까지로, 서울을 한번 가로지르면서 한번 환승을 해야하는 긴긴 여정이었다. 내 기억엔 상암DMC역이었던것 같은데 지금보니 디지털미디어시티 역이다.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9호선도 생기고 공항철도도 생긴 지금 이시점에도 지하철을 타고 가려면 올림픽공원역에서부터는 순수히 지하철만 57분에서 58분이 걸리는 거리이다.

진짜 더럽게 멀었다.


긴 출퇴근길이 피곤하고 힘든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이지만, 당시 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는 지루함이었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 지하철에서의 엔터테인먼트는 한정적이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할 수 없던 적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주 큰 이슈 였고, 이를 위해 항상 많은 준비가 필요 했다.


우선 아침 출근길에 자리만 잡을 수 있다면 무조건 잠을 잤었다. 나이 든 지금과 달리 참 지하철에서 잘 잤었다. 막상 잠들면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이 꿀잠이었고 깨어나는게 너무 괴로웠다. 잠을 자지 않을 때를 위해서 종이책이나, MP3 플레이어, NDSL게임기 등을 준비 했었고, 세월이 흘러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기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지하철에 볼 수 있는 미드 한편 한편이 너무 소중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따위 없던 시절, 회사 개발팀 서버에 올라와있는 미드 파일을 다운받아서 아이리버 U10에 저장하고 출퇴근길에 시청했었다. 기기의 용량이 작아서 미드가 2개 정도 들어갔고 집에가면 꼭 새로운 파일로 갈아끼워야 다음날 새로운 콘텐츠를 볼 수 있었다. 지금 사람들이 통상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액정의 1/3? 혹은 1/4 사이즈였지만 지하철에서 미드를 볼 수 있어서 마냥 좋기만했다. 그 작디 작은 화면으로 자막이 있는 영화도 보고 할 거 다 했었다.

그렇게 그당시에 Grimm이나 Supernatural, Heroes 이런 시리즈들을 봤던 추억이 있다.

그러다가 아이팟 터치 (ipod touch)가 나와서 구매를 했는데 (잠깐 에어팟 아님! 아이팟 --> 전화기능 없는 아이폰이라고 생각하면됨) 하나의 디바이스로 게임도하고 음악도 듣고 영상도 볼 수 있다는거에 뒤로 넘어갔고, 그 다음에 아이폰이 나왔을때는 정말 까무러칠 수준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그 어떤 디바이스도, 책도 내 손에 없는 출퇴근길이 있었다. 그럴때의 희망 중 하나가 매일 아침 역사에서 나누어주었던 메트로 신문이었다. 언제 없어진건지 모르겠으나 예전에는 메트로라는 무료 신문을 항상 길에서 나누어 주었었다. 그래서 아쉬우면 그거라도 샅샅이 읽으면서 출근을 했고, 정 안될 땐 환승역에서 잡지나 다른 신문을 사기도 했었다.

그나마도 없을 땐 진짜 한 역 한 역 지루함을 견뎌야했다. 가끔은 재미난 구경을 하는 운 좋은 날이 있기도 했다. 어느 조용하고 피곤한 출근길 5호선에서 옆자리 아저씨가 패드로 카카오톡 (카카오톡이 있었다는건 내가 신입이 아니라 회사 생활을 그래도 꽤나 했던 시점이었던것 같다)을 보고 있어서 그 커다란 글씨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어제 "또" 연락 두절인 상태로 술을 많이 드셨었나보다. 이에 대해 화가난 와이프 분이 이혼을 요구하는 카카오톡을 스크롤하면서 읽고 계셨었다. 엄청 자극적인 엔터테인먼트였다.


그 땐 지하철에서의 지루함과 싸우느라 참 힘들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스마트폰이 있으니 오늘 월요일 출근하면서 다들 재미난 콘텐츠 즐기시길 바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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