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난이도
현재의 나는 시간 맞춰 아침에 출근을 하거나 지각을 하는 개념이 조금은 모호해진 세상에서 살고있다. 우선 정해진 출근 퇴근시간 자체가 없는 자율 출퇴근제의 환경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또한 재택과 사무실 출근이 혼재되어있기도 하지만, 모바일로 아무대서나 어디서나 출근과 퇴근 그리고 업무 휴식을 기록할 수 있고 코어 업무시간 외에는 아무떄나 출근 퇴근 휴식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왠만큼 정신줄을 놓고 늦잠을 자지 않는 이상 지각은 힘들고, 진짜 빼박 지각인 경우는 지각한 만큼 30분 단위로 휴가를 써서 지각이라는 기록을 없앨 수도 있다.
위 모든 것이 불가능 하던 시절에 살아 보았다. 재택도 없고 자율 출퇴근도 없고, 모바일 앱도 없고, 공식 휴식도 없고, 코어 업무시간 개념도 없고 시간 단위 휴가도 없던 시절에 살아 보았는데, 그 시절 근태를 지키는것은 지금보다 훨씬 노력이 필요했다.
인생 첫 출근날 나는 긴긴 지하철 이동 시간 중 숙면을 하고 잠이 들어서 상암DMC (앗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바뀜) 역을 놓쳐 버렸다. 벌떡 일어나서 전통차에서 뛰어내린 후 반대방향으로 가기 위해 뜀박질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여러분은 아는지 모르겠으나, 6호선은 응암역을 지나면 내려서 건너편으로 갈 수가 없는 순환 지하철이 되어 버린다. 즉 응암역부터 point of no return이고, 반대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냥 그자리에 머물러서 응암 -> 역촌 -> 불광 -> 독바위 -> 연신내 -> 구산 -> 그리고 다시 응암역으로 올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지각할 위기에 있는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어린 나이에 내려서 택시를 타거나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앱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는 기술이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아무대나 내려서 택시를 기대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도박이었다.
지옥같은 순환행을 견디고 나는 다시 디지털미디어시티역으로 돌아와야했고, 출근길이 멀고 첫 출근인만큼 버퍼를 많이 두었기에 지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아슬 아슬하고 심장 떨리는 출근을 하느라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허겁지겁 출근을 해야 했던 시간은 9시 였는데, 알고보니 9시도 안전한 시간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난 입사 직후에 선배들의 수다 사이에서 주워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입사하자 마자 다른 조직으로 (다행히) 가신 실장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실장님은 모두가 몇시에 출근을 하는지 눈으로 보고 엑셀에 적고 계셨다고한다. 사실 그 당시 우리 회사는 1층에서 지하철 게이트 같은 시스템으로 한명씩 사원증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모두의 출퇴근시간이 잘 기록되고 있었으나 이와 별개로 실장님이 개인적으로 메모를 하셨던 건데…. 로직은 이러했다 —> 우리 회사는 9시 출근이지만, 8시반 이전에 출근한 사람은 동그라미, 8시반과 9시 사이에 출근한 사람은 세모, 9시 이후에 출근한 사람은 엑스로 기록을 한다는 것이다. 왜…? 왜?? 도데체 왜!!!!
꼰데의 마음에 왜가 어디있겠냐만은.. 그냥 모르겠고 8시반 전에 다들 출근했으면 좋겠어의 마음이었을 거라 상상 해본다.
위 실장님이 다른 조직으로 가셔서 다행히 8시반 이후 세모 룰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9시 출근은 돌에 밖힌 시간이 었다. 나는 당시 먼 곳에서 출근을 하느라 오히려 더 일찍 일찍 다니고, 왠만해서는 거의 한시간전에 와서 회사에서 입사 동기랑 구내식당에서 조식을 먹고는 했었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 겪었던 응암선 point of no return 지옥 외에는 크게 지각 걱정을 해본 경험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어느 회사든 9시를 아슬 아슬하게 지키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데, 당시 회사는 위에서 설명 했듯이 1층 로비에서 지하철 게이트와 같은 형태의 출입구에 사원증을 찍는 기준이 출근이었다. 그래서 9시 아슬 아슬하게 지각한 회사 동료들이 지하철 역에서 만나는 경우, 다같이 뛰어서 지각을 모면해보자 라기 보단 효율적으로 한명이 (막내가) 모두의 사원증을 들고 뛰어서 로비에 책임지고 도착하여 모두의 사원증을 9시전에 입구에서 찍는 그런 방법도 존재 했었다. 하하하.
예전만큼 출근을 위해 고구분투 할 일은 적어졌지만, 회사 생활 오래하다보니 회사에서 내가 노력해서 지킬 수 있는 몇 안되는 것이 근태인것 같다. 난이도 쉬운 미션이니 지각하지 말고 회사를 앞으로도 잘 다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