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고 없고 와 무관하게 회식은 해야 하니까
인생 첫 이직을 통해 입사했던 나의 두 번째 회사는 당시 대한민국 이커머스 1등 회사였고 매우 풍요로운 곳이었다. 1등이니까 타사들이 어차피 다 우리를 따라 한다 라는 여유로운 마음 가짐이.. 반쯤 물에 잠긴 타이타닉과 같은 회사에서 탈출한 나에게는 매우 생소했었다.
당시 5-6년 차쯤 되었지만 막내였던 나에게 팀 선배들이 회식 메뉴로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진지하게 "닭갈비"라고 대답을 했었다. 팀 선배 중 한 명이 약간 웃음 섞인 호통을 치면서 나에게 "회식 때 그렇게 싼 걸 먹으면 어떡해!"라고 말했다.
순간 머리가 띵 했다. 정말 농담 하나도 보태지 않고 충격을 먹었었다.
회식에..그럼.. 싼 음식이 아니라... 비싼.. 음식을...먹..나...요..???
웃기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진지했다.
태어나서 경험해 본 회사가 하나뿐이었으니, 그때까지는 바깥세상이 어떤지 전혀 감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그 나는 순간 "다른 회사"라는 곳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알고 보니 다른 회사에서는 회식 때 회사 돈으로 맛있는 걸 먹고, 매년 연봉을 올려 줬던 것이다. 많이 올려준다는데 감동한 게 아니다 매년 동결이 아니라는 것에 감동했었다.
매년 연봉을 동결했던 나의 첫 회사는 소위 말하는 "ㅈㅈㅅ" 이런 곳이 아니라 꽤나 규모가 있지만 기업회생에 들어가야 했던 회사였다. 그래서 내가 입사하기 전에는 직원이 4천 명을 넘겼었고 어마무시한 구조조정 후, 회사가 다시 한번 날아보새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다시 뽑았던 신입공채에 내가 들어갔었을 때는 2000명 정도 규모의 회사였다. 간단히 말해서 엄청나게 돈이 없었고, 내가 입사했을 때 거의 모든 복지가 잘린 상황이었다. 자잘 자잘한 복지는 아예 없는 수준이었고, 설날 추석 때 상품권도 5만 원 이상을 준 적이 없었고 1박 워크숍을 가는 것도 한 사람당 5만 원 안에서 해결해야 했었다. 당연히 회식할 돈도 넉넉하지 않았다. 요즘 마인드로는 회식하는 김에 맛있는 거라도 먹자 (뭐 먹는지 보고 갈지 말지 결정을 하겠다)인 경우가 많고 돈이 없으면 그냥 회식을 안 하는 분위기다. 돈이 없으면 회식을 안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고 라떼는 훨씬 더 심했다. 돈이 없지만 회식은 꼭 해야 했고, 참석을 하지 않는다면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막내라인에 있었던 나에게는 늘 회식 장소를 찾는 미션이 떨어졌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온라인 예약이 활성화되었던 시기도 아니었고 회식장소를 찾기 위해 발로 뛰거나 아니면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 정도에 의존을 해야 했었다. 심지어 우리 팀은 적게는 40명에서부터 많게는 60명이 된 적도 있는 꽤나 큰 규모의 조직이어서 회식 장소를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회식 장소 후보를 가지고 가면 부장님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더 싼데 없어?"
이 말을 들으면 나는 썩은 얼굴로 돌아가서 다시 회식 장소를 찾아야 했었다.
더 싼 회식 장소를 찾는 걸로만 일이 끝나지 않았다. 회식 장소에 가서 사람들이 주문을 더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발을 동동 구르면서 테이블들을 감시했었다. 고기만 먹되 냉면을 시키면 안 된다고 그렇게 목이 닳도록 말을 했으나, 누군가가 몰래 냉면을 시켜 먹곤 해서 나를 속상하게 했었던 추억이 있다.
장소를 구하고 현장에서 주문을 통제를 해야 했던 나도, 실제로 비용을 올려야 하는 부장님도 둘 다 행복했던 회식 장소가 한 곳 있었다. 부장님이 실제로 너무 좋다고 표현을 해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곳이었는데 그곳은 홍대입구 근처에 있었던 어떤 무한리필 고기뷔페 집이었다. 1인당 만원 미만의 가격이었고, 별도로 음료나 술을 시키지 않는 이상 1만 원 미만으로 가난하고 배고팠던 우리 회사 사람들이 신나게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심지어 얼음 동동 띄워진 물에 주꾸미들도 있어서 이를 불판에 올려 먹으면서 맛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당연히 고 퀄리티의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판 위에 무언가를 올려서 구워 먹고 비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참 고마운 곳이었다.
이번 주에 팀회식을 하이디라오 가서 했다. 캐치테이블로 미리미리 예약도 할 수 있었고 팀비로 풍족하게 먹고도 일부 돈이 남아서 12월로 넘길 수 있었다. 팀원들의 각종 취향을 반영하여 탕도 무려 3개나 시켰고, 부족했던 "라떼의" 회식 시절을 추억하며 고기를 훠궈탕에 푹 담궈 먹으니 참 맛있었다. 다들 연말에 부족함 없이 넉넉한 비용으로 회식을 할 수 있길, 혹은 돈이 없다면 쿨하게 스킵하실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