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원이 영업사원
회사가 망해가면 정말 상상 이상의 일들이 일어난다. 관련하여 많은 에피소드들을 이미 적었는데, 오늘도 또 하나를 적어본다.
망해가던 나의 첫 회사 P사는, 어느 날 전 직원을 사용해서 영업을 해보기로 한다. 우리가 받은 지시는 전사원에게 떡을 3팩 씩 나누어 줄 테니까 오후에 밖에 나가서 휴대폰 대리점 3개를 방문하여 우리 회사 폰 좀 잘 팔아달라고 영업을 하는 차원에서 떡을 전달하고 그 대리점의 명함을 받아서 다음날 회사에 제출하라는 거였다.
사무실에서만 일하던 나 같은 사람은, 갑자기 누군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일종의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답스럽기도 했지만, 당시에 평일 낮에 사무실에 아닌 밖에 나가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해 준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사실상 빨리 끝내면 자유롭게 퇴근이 가능하니 좋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우울한 이벤트이긴 했다. 회사가 얼마나 리소스가 없고 얼마나 돈이 없으면... 뭘 좀 해보고 싶긴 한데 이런 식으로 했을까? 대리점에게 나누어주는 게 고작 떡 한팩이었고 (떡 사이즈도 큰 게 아니었다 그냥 한 손에 쥐어질 만한... 소설책보다 작은 사이즈), 이마저도 배송을 한다거나 알바를 써서 나눠주는 게 아니라 직원들을 통해서 무료로 배부를 하고 하는 김에 영업도 시키는 거였다.
나는 강남역에 있는 대리점들을 찾아갔었는데, 어색하게 본사에서 나왔다고 하고 떡을 건네면 이게 떡이 아니라 휴대폰 목업인 줄 알고 좋아하다가 실망하는 것을 봐야만 했다.
우리 회사는 대리점들이 폰을 팔기 위해 디스플레이해놓는 용도의 목업조차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진심 씁쓸했다. 실제로 떡 한팩 받고 이 회사 폰을 더 열심히 팔아야지...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은 없지 않았을까.
그래도 나는 양심적으로 떡도 돌리고 뭐 잘 부탁한다는 식으로 말도 하고 명함을 받아왔었는데, 우리 팀에 어떤 후배는 그냥 퇴근하고 명함만 얻어서 다음날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를 보면서도, 대리점들의 반응을 보면서도 찝찝했던 한 주였다.
나는 원래도 성향이 매우 N이라 각종 상상을 하는데, 과거에 저런 일들을 겪어보니 관련해서 더 많은 상상을 하곤 한다. 즉 지금 회사도 사정이 안 좋아지면 기획자던 개발자든 퇴근길에 배달 3건 이상 채우고 집에 가라는 지령이 내려올 수 있고, 물류센터에 가서 패킹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교를 해보자면 휴대폰 영업 보다는 그게 더 쉬울 것 같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