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의 복지
지금 회사는 월요일 오후 1시부터 출근을 하고, 오전 10시 반과 4시 외의 시간에는 자유롭게 출퇴근 및 휴식이 가능하다. 재택도 다른 회사들보다 많이 허용되는 편이고, 휴가도 매우 자유롭게 쓸 수 있고, 30분 단위로 쪼개서 쓸 수도 있으며,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리휴가를 써본 회사이기도 하다. 다른 회사들은 시스템에 존재만 하고 아무도 쓰지 않는 게 현실이었는데 여기서는 정말로 쓸 수 있어서 감동을 받았었다. 제발... 생리휴가는 모두 다 쓰게 해 주자 쫌...
이 전 회사도 자율 출퇴근이었고, 점심시간도 아무 때나 알아서 쓰면 되었었다. 생일날에는 반차를 주기도 했었다.
즉, 요즘 IT 회사들은 시간을 쓰는 데 있어서 꽤나 많은 자유도가 있고 근태 관련된 복지도 많은 것 같다. (아닌 회사도 당연히 더 많겠지만) 해외에 나가서 리모트 근무를 하는 워케이션 같은 형태를 허용해 주는 회사도 있고, 한 달에 한번 금요일 아예 업무를 안 하는 회사도 보았다.
그때 그 시절, 나의 첫 회사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연봉에 포함된 내역으로 의무 근무시간이 하루에 8시간이 아니라 8시간 반이었다. 그래서 9시부터 6시 반까지 일을 해야 했고 그 시간은 모든 면에서 매우 절대적이었다. 회사 업무를 위해 사무실을 비워야 하는 외근, 워크숍, 출장과 같은 상황에서도 어마 무시하게 눈치를 봐야 했고 연차와 반차를 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회사가 내세우는 문화 중 하나가 연차에는 사유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옳은 말이 있을 수가 있는가? 내가 개인적인 시간을 쓰기 위해 연차를 낸다는데 생각해 보니 왜 사유를 써서 내야 했나 싶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늘 연차에는 사유를 써야 되었는데, 특히나 첫 번째 회사에는 다들 엄청나게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연차를 올렸다. 즉 그냥 하루 쉬고 싶다거나, 여행을 간다 라는 사유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30분 조기 퇴근이라는 건 과격하게 달달한 복지였던 것 같다. 가난해서 복지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나의 첫 회사는 매우 삭막했으나, 그래도 뭔가 해보려고 노력을 하긴 했었다. 아마도 돈을 최소한으로 들이면서 그래도 복지스러운 그 어떤 것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은데 동시에 극단의 꼰대 문화를 싸워야 했으니 담당자들은 참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해서 나왔던 복지 중의 하나가 "어느 멋진 날"이었다. 나중에 우리가 "어멋날"이라고 불렀던 이 날은 짠하고 귀여운 복지 날이었다.
3가지 정도 요소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이날은 모두가 옷을 차려입고 오자는 것이었다. (비용이 들지 않음) 그래서 좀 드레스업을 하고 와서 기분을 내고 베스트 드레서는 상을 준다는 것을 내걸었었다. 이날 나름 차려입는답시고 레이스 달린 원피스 정도를 입고 출근했던 기억이 나고, 출근하는 날 로비에서 사람들이 옷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것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던 게 기억이 난다. 실제로 갑자기 하루정도 다들 옷을 차려입으니 좀 기분이 업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팀에 어떤 남자분은 한복을 입고 출근해서 결국 상을 받았었다.
두 번째는, 귀엽지만... 회사 식당에서 이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을 준 메뉴가 나왔었다. 예를 들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돈가스 같은 메뉴인데 평소보다 사이드메뉴도 하나 더 주고 했었다.
세 번째는, 30분 조기 퇴근을 허용해 주는 것이었다. 고작 30분이라고 하겠지만, 이 30분은 대단한 것이었고... 사실상 30분 조기퇴근이란... 야근을 늘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칼퇴를 해도 된다라는 말과 같았다. 실제로 다들 퇴근한다고 몰려서 엘베가 마비가 돼서 30분이라고 해봤자 빌딩을 떠나는데 다 썼던 것 같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30분이었다.
메마른 시절, 정말 멋진 날이긴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