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악 도(三 惡 道)

호사함 끝에 남는 고뇌와 아픔은

by 김중근

삼 악 도(三 惡 道)



- 김 중 근

여러분들이나 나나 어떤 일을 무엇에 한번 크게 당하고 나면, 주춤하거나 다신 그걸 관심조차 두지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낮의 불볕 더위에 두터운 겨울 외투를 걸치고 거리를 활보한다고 생각하면 아마 일분, 일초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45년여전 해외 프로젝트로 김포공항을 출발, 중간 기착지인 필리핀, 바레인을 경유하여 목적지인 카타르까지 가야했다. 마침 1980년 그 시절 11월 중순경의 날씨는 바람이 매섭게 불고,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무척 쌀쌀했다. 현지 기후를 무시한채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기내에 탑승했다. 내복을 겹겹이 끼어입고 탑승했던 당시 나는 소음인으로 워낙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었다. 기내는 더웠다. 그런대로 잘 버티고 필리핀 공항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턱 막히는 숨결은 가늠조차하기 힘들었다. 결국 필리핀 공항의 옹색한 화장실을 찾아 그 곳에서 속 내의를 벗어던져,간편 복장으로 갈아입고 바레인까지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리핀 공항을 이륙한 후 바레인과 카타르에서의 해양성 열대의 사막 기후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뜨거움이었다. 습식 사우나같이 살인적인 더위였슴은 말 할 나위 없었다. 불쾌지수 높은 끈끈한 불볕 더위로 고생을 한 후, 다신 내복(內服)을 입지 않겠노라고 다짐 했고 귀국 이후 내복 미착용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실내 온도를 적겅한 온돌로 설정해 놓으면 내복을 입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온도가 자동 조절되고, 세계 도처의 현지 기후와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으니 나와 같은 어리석은 전처를 밟지 않아도 된다.


한편 언젠가 고등어 통조림을 먹고 온몸에 반점이 돋고 토하기를 몇차례 반복한 일이 있다. 그 후 고등어 통조림을 먹을 때마다 탈이 나거나 식중독 현상이 나타나곤했다. 원래 부터 좋아하던 등 푸른 생선류조차 한번쯤은 시각, 후각, 미각검사를 마친 후에야 시식을 하는 좋지 않은 습성이 생기게 되었다. 가끔 구내 식당의 배식대 위에서 푸른 등의 고등어가 천장을 향해 차곡차곡 쌓여진 자반을 볼 때마다 내 의식의 발 바닥에서 부터 올라오는 거부감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정성스럽지 못한 식단과 조리가 원인이었겠지만, 비린내 나는 고등어가 식단에 올라오면, 학교 밖에 있는 손 칼국수 한 그릇으로 대신하여 한끼를 때우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온몸에 반점이 돋고 고생을 반복하면서도 노릇노릇 구어진 생선을 먹게 되고,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는 내복을 벗어야 되지만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또한 내복을 계속 착용해야 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 시간의 흐름은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세상의 오욕(五慾)-식욕, 물욕, 수면욕(睡眠欲), 명예욕, 성욕(性慾 = 색욕色欲)-에 물들어 그 때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유혹과 갈등은 종잡을 수 없다. 막연한 생각에 무작정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행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한 평생 허무하게 살다 죽으니 지옥이다. 천상, 인간, 수라(修羅)의 삼선도(三善道)를 윤회하면서 축생, 아귀, 지옥의 삼악도(三惡道 = 악취惡趣)를 오락가락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사람들은 겉은 멀쩡하지만 제 몸 속에 오물을 가득히 채우고서도 길거리에서 똥을 만나게 되면 그 냄새가 더럽고 불결하다고 피한다. 내 마음 속에 가려져있는 온갖 허물과 죄업(罪業)을 숨기고 남의 허물만을 탓하게 된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호사함 끝에 남는 고뇌와 아픔은 사람에게 있어서 참으로 독특한 경험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게 되지만 그 아픔 때문에 그 행복감을 포기하진 않는다.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아프면 아플수록, 애착을 끊으려면 끊을수록, 고통을 피해나갈 방법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호사스러운 아픔인지를 온 몸으로 알게된다.


- 2005년 6월 고등어가 나온 어느 날 ....


작가의 이전글사랑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