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등댓불이 켜져있기....
지방 대학의 현주소
- 김 중 근
겨울의 중심, 가르쳐야 할 학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방 대학 경영난이 구조조정 차원의 교직원 인원 감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정에는 더 이상 새내기들의 발걸음을 찾아 볼 수 없다. 강의실의 문은 반쯤 열려 있고, 그 안에는 먼지만 수북히 쌓여있는 책, 걸상만이 지난 시절의 열기를 기억할 뿐이다. 한때는 웃음과 질문, 그리고 열정과 꿈으로 가득 찼던 그 공간이 이제는 공허한 바람만 가득하다.
지방의 대학들은 하나, 둘씩 간판을 내린다. 폐교된 어느 시골 학교의 오래된 간판처럼 희미해진 이름, 그 아래에서 학문의 불씨를 지키던 교수들은 이제 자신이 지켰던 강단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정년의 끝이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낯선 이름의 폭거 앞에서, 그들은 교단 대신 길거리로 내몰린다. 그 길은 지식이 아닌 생존을 묻는 길이다. 빈 강의실은 대학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칠판에 적힌 마지막 강의의 흔적, ‘희망’이라는 단어..., 그 글씨는 지워지지 못한 채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
4~50대 교수들은 4, 50대 폐기현상과 맞물려 재임용 탈락은 곧 실업을 의미한다. 청운의 꿈을 갖고 승진 연한의 보편적 관례대로 전임 강사에서 정년에 이르기까지 기본 생존권을 보장받는 전제로, 대학에 봉사하고 열정으로 살아온 그들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현 시대의 흐름”이라고. 그러나 그 흐름은 너무도 혹독하다. 학생들이 떠난 자리에 먼지만 쌓이고 찬 바람만 가득한데, 배움의 터전이 사라진 자리에 묵묵한 절망만이 쌓인다. 그러나 대학은 재정의 어려움을 내세워 40을 훌쩍 넘는 교수들을 무참히 거리로 내몰아 간다. 그러기에 실업과 그로 인한 �가정 붕괴�현실은 이처럼 심각하지만 일부 대학 경영자는 이를 외면하려든다. 오로지 대학을 위한 자구책이라며, 교수 재임용 및 승진이나 인사 제 규정에 관련해서는 자기들 입맛대로 전횡을 일삼는다. 수시로 열리는 교수회의에서 교수들의 신분 불안을 야기시키는 가운데 “신입생 모셔와라"등의 인원 할당식의 홍보 강요를 받기도 한다. 대학 재단 관계자는 막대한 홍보비를 줄여서, 가장 저렴한 에산으로 홍보할 수 있는 교수들에게 의존하려하기 때문이다. 학과에 학생이 모집되지 않으면 해당학과 교수들의 무능으로 몰아쳐, 구조 조정 차원에서 물러나야 된다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학교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단에 서야되는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는 사제지간의 관계라기보다 거리의 약장사들이 약을 팔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호객간의 관계로 전락한 실정이다. 학생수가 모자라 교양 과목의 폐강이 속출한다. 대학 부근 서점들은 교재 반품에 속앓이 중이다. 상품을 살 고객이 없어서 재고만 쌓여가는 기업이 부도될 위기에 처해있는 현실과 다름없다. 신입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학과들의 교수들은 망연자실 대책없이 길가에 쫒겨나야 할 상황에 처해진다. 서울. 수도권 대학으로 입학 및 편입하는 지방의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도 지방대의 공동화를 부채질한다. 지방 대학생들은 서울의 대학으로 무더기 편입하는 탓에 연중 학생 채우기에 바쁜 것이 지방 대학의 현실이다.
지방대 신입생들조차 서울 지역 대학 진학을 위해 휴학 후 재수하는 경우가 많아 지방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다. 지방대를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은 학생수 부족만이 아니다.
일부 지방대들이 물불 안가린 사활을 건 신입생 '모집 유치 작전'을 펼치면서 스스로 대학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도 한 원인이다. 심지어 어느 고등학교 교무실 입구에 “대학 관계자 출입금지” 라는 안내문을 붙여 마치 잡상인 취급을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심경이 착찹하다. 모 대학의 경우 '미충원 때는 학과를 폐지한다'는 전제를 달아 교수들에게 신입생 모집을 할당했다고한다. 이에 따라 교수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사재를 털어 등록금의 30~50%를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신입생을 끌어온 것으로 어느 보도 자료로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학생 수 부족사태가 뻔히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식 대학 설립 인가를 방조한 교육부 책임은 더 크다 하겠다. 정부의 정책적 오류를 교수들이 책임지고 교수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동안 대학의 열악한 상황을 방조, 조장한 관련 정책 입안자들에 대한 준엄한 문책과 정책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수능. 내신등 성적을 감안하지 않고 원하기만 하면 뽑아주는 무분별한 '선착순 모집'도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등록금만 내면 아무에게나 졸업장을 주는 대학이라면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지방 대학의 현 주소다. 이런 현실 속에서 상아탑을 지키기 위해 교수들은 오늘도 캠퍼스의 낙엽을 밟으며 힘없이 고 3 교실을 찾는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강의노트가 아닌, 신입생 유치를 위한 홍보물과 사직서가 쥐어져 있다.
그러나 교수로서의 자존심과 눈빛만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 속엔 ‘상아탑’이라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학문의 등댓불이 켜져있기 때문이다. 그 등불은 말없이 속삭인다. “지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이 현실을 극복하리라는 힘찬 희망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다.” 어쩌면 그들이 길 위에서 전하는 침묵의 걸음이야말로,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진정한 교육자의 발자국일지 모른다...
- 2010년 1월, 신입생 유치를 위해 고교 방문 하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