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간 관 계(人間關係)

사람과 사람 사이

by 김중근

인 간 관 계(人間關係)

- 김 중 근

우리는 적당한 거리(距離)로 살면서 서로 밀접해있거나 등을 지고 살기도 한다.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이 폭풍우를 만나, 사람을 흥분시키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갈갈이 찢기고 상처난 심사(心事)로 마음의 병을 얻게하는 것, 물안개 피어있는 평온의 호수같이 치유의 은사를 얻는 것... 모두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다.


초, 분, 시간 마다 우리는 대립되기도 하고 타협하면서 산다. 인간의 이해 관계 사이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그 틀 안에 갇혀 산다. 대체로 산술적(算術的) 통념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주위는 아랑곳없이 내 생각과 다르면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 각자의 고집만 내세운다. 인정(人情)마저 메말라가는 현실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더욱 각박해진다. 더러운 웅덩이에서 나온 개가 자기 몸을 털어 썩은 물기를 털어내듯이 가차없이 마음을 털어내는 경우가 많다. 정(情)을 끊고 터는 일이 다반사이다.


같은 직장의 상사나 동료, 나와 이웃과 선후배 등의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식없는 솔직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를 잘 다니다 느닷없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둘도없이 친했던 친구나 선,후배들이 어느날 갑자기 의리없이 갈라서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된다. 사제지간(師弟之間), 부모 자식지간(子息之間) 불목(不睦)하며 나와 관계되지 않는다하여 이웃간 눈 인사 조차 나누지 못하는 사회가 된 듯하다. 모두 대체적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서로의 마음을 진실하게 주고 받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 마음을 주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진실한 대화가 통할리 만무이다. 서로 감시하며 믿질 못하니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남기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때로 이름모를 병에 시달리고 고통을 받는 것은, 내몸이 허약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마음의 병이 몸의 큰 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특별한 병명(病名)을 모른채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의 병이 큰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와 타인과 관계되면서 나 자신의 마음에게 상처와 고통을 만든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실의(失意)하거나 번민(煩悶)에 빠져 큰 병을 키우도록 자신에게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바람은 가만히 있는데 스스로 몸을 떠는 격이다. 즉 인간 관계에서 오는 마음의 병이 큰 원인이다.


마음의 병이 사람들로 하여금 얻어진 병 이라면 마음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나쁜 감정들을 순화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통할려면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진정성을 보이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 자존심과 쓸데없는 격식과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있는 그대로 봐주면서 포용해야 올바른 인간관계가 만들어진다. 서로의 이해가 마음 교감(交感)의 첫 관문인 셈이다. 우리는 늘 행복(幸福)을 찾는다. 우리가 즐겁게 산다는 것은 사람 사이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서로 교차하고 공유하면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고 만나는 일이다.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 정(情)이라는 언어(言語)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면 상대방(相對方)의 가슴 속에 들어앉아 나뭇잎이 팔랑거리듯 그 사람에게도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정과 마음을 통하는 일이다. 우리들 마음 사이에 정이 피어올라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힘도 결국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서로의 눈 빛이 칼 날처럼 부딪히고 그대의 시선과 내 시선이 미끈거리는 그 틈새로 불신(不信)이 어른거리는 것도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적대심(敵對心)과 증오(憎惡)로 가득찬 적대관계 또는 시기심과 질투로 끓어오르는 경쟁관계(競爭關係)의 관계는 서로의 거리가 가까이 할수록 불편하기 짝이 없다. 멀어지면 멀어 질수록 오히려 그들 마음이 편해진다. 항상 등을 돌리고 등져 서있다. 그들 시선에선 서로에게 저주와 증오로 가득 채워진 미사일이 발사되기 때문에 도저히 마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의 거리가 멀수록 불편하기 짝이 없고 가까이 할수록 그 모양은 아름답다. 상대방이 고난(苦難)과 역경(域境)에 처해 있을때면 모두는 격려와 따듯한 마음으로 위로를 해준다. 그 고통(苦痛)을 반으로 쪼개어 나누어 갖게 된다. 상대방이 환희(歡喜)에 찬 일들이 생기면 그 일들이 각자의 일인양 기쁨이 배로 는다. 상대방이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면 염려하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운다. 때로 상대방이 몸져 누어있으면 정성을 다하여 돌봐주기도 한다. 인간미(人間美)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은 서로 가까이에서 마음과 마음을 교류하고 일치하려고 하는 관계에서 부터 출발한다. 그런 인간미(人間味)넘치는 사람들에게는 향기가 짙다. 아름답게 핀 꽃에 벌, 나비가 찾아와서 꽃을 떠나지 않듯, 늘 주위에 언제나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그 향기에 사람들이 절로 모여 따르게 되어있다. 늘 언제봐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얼굴, 신뢰할 수 있고 넉넉한 웃음을 가진 멋진 사람들은 늘 함께한 꽃과 벌, 나비처럼 항상 곁을 떠나지 않고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는 서로에게 가깝고 편안한 존재(存在)가 된다. 몸은 비록 멀리있어도 늘 마음이 가까운 거리에서 격의(隔意)없는 상대가 된다. 아울러 서로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준다.


그럼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상대성이 존재한다.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내가 마음을 주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그 만큼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상례이다. 내가 나쁜 마음을 갖고 대하면 상대방도 역시 나쁜 감정으로 대할 것이다. 손끝에 남아있는 마지막 욕심까지 버렸을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진정한 마음으로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우리의 인간 관계란 서로의 정(情)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간 관계란 한 순간의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설명되어지거나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주는 격려와 질책 속에 긴긴 나날을 함께 걸으며 울고 웃고 한숨 쉬고 지겹도록 짜증도 내다가 못내 보고 싶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인간 관계가 완성된다. 그러나 흙탕물이 회오리가 지나고 그런 시간이 지나면 정숙함과 고요함이 자리잡는다. 마음 속에서 처절하게 혼돈스러움이 지나가면 서로의 마음이 한 마음 되어 신비함이 자리하게 된다. 오묘함과 신비함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듯 무엇이든지 가슴에 스미는 모든 것을 표현하지 않고서는 서로의 마음도, 생각도 전해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기쁨과 슬픔 모든 것을 느낌으로, 언어로, 글로, 전할수 있는 모든 것을 관심과 열정으로 모두 표현해야 비로서 사람들과 유대감도 생겨 진정한 인간 관계가 형성된다.

우리는 서로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형식적으로 대하고 있진 않는지?....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다는 명분으로 상대방을 이용하려 들진 않았는지?....왠지모를 서운함에 내 마음이 퉁퉁 불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는지?....가슴 열어 스스로를 성찰해보고 올바른 인간관계(人間關係)를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선후배 동료, 친구나 선생님, 부모님과 멀어지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대화가 부족한 엇갈린 인간 관계 때문일 것이다.


나무들이 긴 세월 아무 말없이 침묵한다하여 고통없이 세월을 보내고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칼 바람의 추위에 시달려 고통과 대립한다. 바다가 파도를 토해내듯 온 몸으로 아파 본 나무들의 음성이 큰 바람에 애절(哀切)한 굉음을 낸다. 나무가 짙은 녹음과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기까지, 수난(受難)의 세월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감히 이야기 할 수 없다. 이파리에 맺혀진 새벽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로 부터 미명이 밝아오는 소리를 느낄 수 있는 맑고 고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고통을 이해하고 같이 울어본 사람만이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다시 떠오를 찬란한 태양을 영원히 내것으로 소유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 만큼은 누구도 소유할 수 있거나 차지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벌어진 틈새 어디든지 거짓, 시기심, 욕심, 배신, 좌절, 고뇌등이 어슬렁거려 고통의 늪이 생긴다. 불신이 둥둥 떠다닌다는 피해 의식으로는 서로의 마음을 소유하거나 공유 할 수 없다. 마음을 붓고 부어도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없는 것은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형식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서 진실해야 한다.

모든 고민의 원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마음을 비우고 다시는 욕심을 채우려하지 않을 때 순수한 인간관계(人間關係)가 완성되는 것이다. 엄마와 태아 사이같이 마음과 마음의 간격이 없는 관계만이 봉사와 희생과 사랑이 가능하다. 태양과 빛같이 그 간격과 사이가 없는 곳.....온 마음을 주어 서로의 느낌과 생각이 일치되는 사람과 사람만이 따듯한 정을 통할 수 있고 올바른 인간관계(人間關係)를 맺을 수 있다고 믿는다.

2023년 5월 25일

-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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