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은 희망
농 심 (農 心)
- 김 중 근
유난히 안개가 심한 아침이었다. 나들이 길 풀섶에 맺힌 이슬이 영롱하다. 이슬은 햇살에 투명한 빛을 발한다. 올챙이는 꼬물꼬물했던 시절을 깨고 어느새 참개구리들이 목청껏 합창을 하곤 했는데 황소 개구리의 꽥꽥 소리가 주위를 압도했다. 그나마 근래엔 그들 소리마저 잠잠하다. 주변의 환경 오염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경고음으로 들린다. 강둑에 우뚝우뚝 서있는 벚나무는 얼마 전까지 화려했던 가지 위로 청녹색 푸르름을 과시한다. 평소 사람들이 보이지않던 나들목이 오늘은 혼잡하다.
부쩍 농부들의 손길이 바빠진 농로(農路)마다 이른 아침 부터 모판을 싫고 가는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철퍼덕 철떡 지나간 진흙 바퀴 자욱을 따라 농부는 모처럼 바쁜 일손을 과시한다. 일년의 절 반 이상 놀던 땅을 갈아엎고 물 길을 대느라 정신없다. 일하는 농부 가슴 마다 튼튼한 씨를 뿌리고 열매와 낱알들을 달아낸다. 농부(農夫)의 꿈이 하늘을 향해 온몸으로 손짓한다. 바로 올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장단이다. 농부는 연신 아낙과 함께 흥얼거리며 장단을 마춘다. 저 맑은 햇빛에 장단을 맞추니 농부의 꿈이 피어오른다. 적당한 바람과 투명한 햇빛이 어울려 농부의 어깨가 들썩인다. 알곡을 맺어 여물게 할려는 농부의 의지가 장단을 타고 팔뚝의 힘찬 혈관에 흐른다. 힘든 일이겠지만 농한기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에 분명 좋은 일이고 기쁜 일인 것 같아 나마저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지난 10년 최근(最近)동안 세상은 정신없이 바뀌었다. 지식. 정보화 사회로 어지럽게 변하면서 산업 사회의 이행(移行)이 시공(時空)의 개념과 장소(場所)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거리가 단축되고 시간이 팽창되어 언제 어디서나 세상의 움직임을 한 눈으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넽 쇼핑 몰에서 소비자가 직접 농산물을 주문하여 소비자 안방까지 가장 싼값으로 배달받는 시대에 와 있으니 농민들은 일년 농사 죽어라 지은들 품값, 종묘값, 비료 값도 변변치 못하게 받지 못하고 빛에 허덕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게다 봄이 와도 철새인 제비가 이 땅에 찾아오지 않는 심각한 환경 오염과 온난화 현상으로 농사 짓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지리산의 침엽수들이 70~80%가 고사 위기에 처해졌다는 보도에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시기인 듯하다.
더욱이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목숨 다하여 농사를 지은들 희망이 없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정부의 농어민을 위한 정책이 무한 국제경쟁(國際競爭) 체제하에서 마지막 보루마저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값싼 농산물의 물량 공세와 칠레 등의 질 좋고 값싼 청과류 등에 밀려 우리들의 식단(食單)을 잃고 있다. 농경 산업에서 점차 서비스 산업의 이행이 과속화(過速化)되는 현실 속에서 백만 가지의 정책을 알기는 쉬워도 이를 한 가지도 현실로 수용 할 수 없는 농민(農民)들의 마음은 편안할 날이 없다. 꿈으로 고이 간직한 농민의 마음들이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보낸 현실들을 돌이켜보면서 그들은 이젠 희망을 잃고 산다. 그들의 심신(心身)은 지쳐있고 모든 일을 고달프게 느낀다. 한 철 농사로 자녀들의 학비며 서울로 올라간 자녀들의 출세와 성공을 기원하던 그들의 꿈이 오히려 화근(禍根)이 된다. 그들은 자손만대(子孫萬代) 부귀(富貴)를 그리워하나 끝내는 괴로움과 화근(禍根)의 뿌리가 된다. 일년 내내 땅을 일구고 파종을 해서 모를 심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다. 농가 수익은 감소되고 수입 농산물에 밀려 제값 받기도 어렵지만 자녀들의 뒷바라지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수입이 지출에 못미치니 당연히 생활에 여유가 없다. 더하여 농업 인구는 줄고 인력은 고령화 되어 미래 농업을 이끌어 갈 영농인(營農人)들이 농촌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잘 살기를 바라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世上)일이다.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천차만별(千差萬別)이듯 똑같이 노력해도 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농민뿐 아니라 모두가 어려운 경제 불황의 여파도 한 몫하고 있으니, 참다 보면 좋은 세상 오리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다. 만석군(萬石君) 부자는 만(萬) 가지 괴로움이 있고 천석군(千石君)은 천(千) 가지 걱정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근심이 있고 괴로움이 따르게 되어있음을 상기(想起)하면서 농민(農民)들은 작은 수확에도 감사(感謝)함을 느끼며 산다.
하여 농산물 FTA.와 국제적인 시장의 개방화로 도.농간의 소득 격차가 아무리 심해도 이를 글로벌화한 스마트 영농기술과 경영으로 농민들은 헤쳐나갈 것이다. 해마다 위태로워지고 삭막해가는 농업 환경과 여건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산업이 바로 6차 산업이다. 1차,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하고 더 나아가 농촌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단순히 농산물을 경작하고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과 유통과 더불어 체험 할 수 있는 전략으로 6차 산업이 각광받는 이유이다. 청정(淸淨)한 심성을 지켜나가려하는 농부는 자조적인 흥얼거림에 희망(希望)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근래 귀농, 귀촌 인구가 날로 증가하고 도시인들의 농업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활발해짐에 따라 자연적으로 6차 산업이 부각하고 있다. 생산, 가공, 유통, 체험, 서비스 개념이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바꾸고, 웰빙 시대의 외식 산업과 먹거리의 연계화로 농촌에 기업형 농장들이 이 곳 저 곳에서 운영되고 조합 형태로 산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겐 부가가치(附加價値)가 높은 일거리 창출과 경영이 안정화됨으로써 농촌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소비자들은 농업 농촌의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농촌의 멋과 맛을 느낄 것이다. 자자손손(子子孫孫) 뿌리를 박고 사는 이 나라의 농토를 일구는 동안, 자그마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며 사는 이들은 분명 희망이 자라는 것이다.
지금은 깜깜한 절벽같이 어둠만 보이는 농촌이지만 맹인(盲人)이 길을 찾듯 농심(農心)은 이 시간에도 희망을 찾아 더듬거린다. 살면서 희망(希望)의 뒤안길에 절망(切望)이 있음을 헤아려, 농민들은 늘 겸허(謙虛)와 청빈(淸貧)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복전(福田)의 조그만 행복을 놓치않는 농심(農心)이 있기에 농촌은 희망이 있다.
- 2023년 5월 24일 웅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