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 지(墓 地) 셋..

고통도 슬픔도 묻어....

by 김중근

묘 지(墓 地) 셋..

- 김 중 근


언덕 위의 카페 좌측 창살 넘어, 군데군데 벌거스럼한 진흙 둔덕 위에 이름모를 묘지(墓地) 셋이 숨죽여 봄을 맞는다. 봄 내음 불어오는 남향과는 관계없이 동북 방향으로 자리한 무덤 셋은 꽃샘 바람까지 비껴간다. 수증기같이 자욱한 안개를 이불삼아 누워있지만 서로는 한 뼘 만큼의 사이를 두고 말이 없다.

한 뼘 차이만큼 이 세상 어느 사이보다 더할 나위없이 가까운 거리는 없다. 한 손을 내밀면 바로 한 손이 포개지는 거리다. 살폿이 이마를 대면 바로 도톰한 입술이 포개지는 거리다. 사랑을 하면 새로운 세계와 세상이 열리는 거리다. 그런 한 뼘의 사이!...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뼘 차이로 영원히 갇혀 살아야 되는지 안타깝다. 점점이 떨어진 낙엽처럼 무덤군(群)을 이루어 세를 과시하지만 합장(合葬)되지 못한 한 뼘의 저 절대 거리(距離)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거리처럼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무덤군(群)으로 부터 작은 시골 마을의 하얀색 교회로 이어지는 햇빛이 일순간 터져 나온다. 서로가 쉴 수 있는 곳, 서로가 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뼘 거리이지만, 머나먼 마음들이 이 세상 다하고 저승에 이르러서도 함께 있지 못함을 햇살은 알고 있는지....무심하다. 연기처럼 버림받고 도망가는 영혼을 위해 한 뼘의 묘지 틈 사이에서 비집고 나온 영혼한 삶의 햇살이 안개 속에 녹아든다.


일반 적으로 묘비엔 죽은 사람의 이름· 관위(官位)· 행적(行蹟)과, 자손의 이름, 생년월일, 묘지(墓地)의 주소 등을 새겨 널[棺(관)]과 함께 파묻지만, 무덤 셋은 새긴 글이나 세운 묘비(墓碑)도 없이 돌이나 도판(陶板) 하나 없다. 이 세상에 지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산과 들을 넘어 일렁거리는 가벼운 안개만 자욱 할 뿐이다. 흙을 눌러 파 묻고 잔디로 덮여있을 뿐이다. 영원히 기념하기 위한 징표가 전혀 없는 무덤이다. 김제 평야를 중심으로 행해진 일반적인 매장 문화인 듯 하다. 사람의 평균 수명으로 치면 2021년 기준, 남자의 경우엔 79세이고 여자는 87세라고 한다. 그 중 생(生)의 삼분의 일을 잠자는데 쓴다고 한다. 그렇지만 주어진 목숨은 하루살이가 한낱 꽃이 피었다가 시드는 거와 같고 금방 날아갈 휘발유같이 허망하고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잠시 현세(現世)에서 80여평생 잠깐 동안 머무는 생(生)일 뿐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집터나 근무처에 대해서는 너무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내가 머물 몇 광년이 걸릴지 모를 영생(永生)의 집에 대해서는 한 평도 안되는 공간 속에 빗장을 걸어 채운 채 속박을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유사이래 묘지(墓誌)의 역사는 매우 길어, 아주 오래된 것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사자의 서(書)”가 있다. 중국에서는 후한(後漢)시대 부터 시작되어 육조(六朝)·수(隋)·당(唐)나라 때 가장 성행하였으며, 한국에서는 도입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조선 시대에 성행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의 상징으로 전락해버린 오늘날의 매장 문화는 역사적 개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으나 묘지 셋은 이미 태고에 버려진 운명이었다고 시위하듯이 시들은 아침 햇살에 일렁이는 안개 속에 침묵(沈黙)한다.

시린 바람 속에서 한철 시달린 묘지의 잔디장은 생(生)의 싹이 파랗게 돋아나나, 주검은 컴컴한 묘지에 갇혀있다. 죽음이 모든 생명의 끝이듯 아름다움도 추함도 모두 한줌의 흙이 될 뿐이지만, 바람과. 별과 해와 달이 친구된 묘지 셋은 밤새 흔들리는 별빛을 가슴 열어담고 산다. 무엇인지 알길 없는 각자의 삶속에 얻어진 서러운 운명일지라도, 묘지 셋은 밤새 별과 달이 보내온 빛을 희미한 아침 햇살에 달아 저 멀리 하늘까지 날리니 넘실대는 안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저 멀리 사라진다.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묘지 위에 봄 햇살 내린다. 서러운 밤에 눈물이 마를 때까지 통곡을 했을 슬픔도 잠시 스친 바람에 영영 멈추어 버린다. 훔칫 놀라 날아가버린 이름모를 새는 안개 속을 헤멘다. 고통도 슬픔도 묻어 영생(永生)의 기쁨을 얻고자 했던 그 자리는 수심만 가득하다. 무욕(無慾)이 만발해서 수증기같이 자욱한 안개가 녹아나는 곳, 보석같이 반짝이는 별빛이 내리는 곳, 아무것도 갖고가지 못할 썩을 몸이 영생(永生)의 기쁨으로 밤마다 달맞이 꽃으로 피어있는 곳이다. 실패한 삶에도 새 삶이 파랗게 오르는 곳이다. 새 싹이 오르는 자리에 영생(永生)의 신앙(信仰)이 싹튼다. 아름다운 몸매와 아무리 백옥(白玉)같은 살결과 아름다운 매혹적인 입술을 지녔다해도 진실함과 따스한 마음을 갖지 못하면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불과하다. 한줌의 흙처럼 사라질 송장과 다름없다. 서로의 교감을 따뜻한 가슴과 진실로 대하질않고 남을 속이는 세상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그 고독을 이승 길에서도 떨치질 못한채 무덤 셋은 한뼘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면서 살든지 아니면 평생 괴로움에 허덕이다 병들어 죽음에 이르든지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우리는 생(生)의 종착점(終着点)인 각기의 묘지에서 안식을 취하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우주의 섭리요 자연(自然)의 이치(理致)다. 얻는 것만큼 잃게 되고 잃는 것이 클수록 대단한 것을 얻을 수 있듯, 모든 것을 잃고난 후, 가벼워진 생(生)의 주머니가 마무리된 묘지(墓地)에 현현묘묘(玄玄妙妙)한 대우주의 뿌리가 내린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따스히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잃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편안히 쉴 곳과 갈 곳을 찾아 정처없이 헤메다 낭인(浪人)이 되어 이름모를 곳에 묻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묘지 셋을 보고 벌써부터 슬퍼진다....


- 2024년 3월 24일(수) 웅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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