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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싼, 이별해야 할 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59

by 태화강고래

2023년이 어느덧 하루 남았다. 작년 이맘때 울산에서 우리 가족은 경기도로 다시 돌아왔다. 그로부터 딱 1년 후인 엊그제, 남편이 홀로 생활을 마치고 차에 세간살이를 가득 싣고 돌아왔다. 남편을 태운 투싼이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투싼은 남편 소유의 차지만, 내게 아주 특별하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탄 차라 올해까지 17년 된 노후차량이다. 그래도 주행거리는 겨우 14,000km이다. 남편이 도보로 출퇴근을 해서 연식에 비해 주행거리가 짧다. 도로에서 달린 시간보다 주차장에 서 있던 시간이 길었다.


결혼 전까지 장롱면허 소지자였던 나에게 투싼은 첫 차나 다름없다. 겁이 많은 나는 차를 사 주시겠다는 아빠의 말씀도 거절하고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내 명의로 된 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 결혼하고 나서야 '그때 큰맘 먹고 차 선물을 받을걸'하고 가끔 아쉬운 후회를 할 뿐이다. 그런 내가 달라졌다. 상황이 나를 변화시켰다. 되돌아보니, 투싼과 함께 한 시간은 딸로서, 엄마로서의 내 사랑과 책임을 묵묵히 담아낸 기억들로 가득하다. 그런 나를 곁에서 지켜봐 준, 울고 웃었던 내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차이다.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져 서울 병원에서 지내시는 동안, 출근 전 새벽 연수를 받으며 장롱면허를 실제 면허로 바꿔놓았다. 운전할 수 있기에, 없던 능력이 생겨난 셈이다.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도 내가 원할 때마다 엄마를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고 뿌듯했다. 서울에서 지내시던 엄마를 곁에서 자주 뵙기 위해, 수원에 위치한 재활병원으로 모시고 내려오면서 투싼과의 진짜 동행이 시작되었다. 수원에 있는 병원에 다니면서 능숙하지 않은 운전솜씨덕에 투싼은 몸에 군데군데 상처를 많이 남겼다. 협소한 주차장에 들락날락하며 익숙해질 때까지.


그 후로 용인에 위치한 재활병원 대여섯 군데로 옮겨 다니면서 투싼은 내 눈물과 한숨을 고스란히 말없이 받아주었다. 혼자 보호자 역할을 감당하는 시간들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남동생은 서울에 있고, 여동생은 미국에 거주했기에 엄마 병원을 검색, 직접 방문해 상담하고 이사까지 마치는 건 항상 내 몫이었다. 가끔 남동생이 휴가를 낼 수 있으면 함께 엄마를 전원시키는 일을 좀 더 편히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일에는 출근 전에, 주말에는 주말대로 혼자 병원에 계시는 엄마를 보러 다니는 길에 항상 투싼이 함께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민 끝에 퇴사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 라디오 멘트를 들으며 서러워 울었던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누구 앞에서도 보이지 않고 참았던 눈물을 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껏 쏟아냈다. 지금은 잠시 쉬는 것일 뿐, 꼭 사회생활을 다시 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었다. 왜 그리 서러웠는지. 벌써 6년이 되었다. 기회를 틈타면서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평일에는 나를 회사와 엄마병원으로 데리고 다니며 내 발이 되었던 투싼이 주말에는 가족들을 데리고 놀이공원과 박물관으로 바삐 움직였다. 재잘대는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끝말잇기, 스무고개, 낱말 맞추기 등을 해가며 서울로, 경기도 내에서, 전국으로 다녔다. 결혼 생활 10여 년을 투싼과 함께 하며 아이 둘이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


울산에서 혼자 남은 남편의 출퇴근을 위해 투싼을 남겨놓고 올라왔었다. 그러면서 새로 장만한 산타페를 데리고 경기도로 왔다. 갑자기 부자가 된 듯, 차 두 대를 소유하게 되었다. 보통 주변에서 두 대를 소유하고 있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남들보다 차를 많이 쓰는 편이 아니다. 남편이 울산생활을 정리하고 올라오면서 부득이하게 투싼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가정의 형성과 확대를 지켜본 역사적인 투싼이지만, 낡기도 했지만, 그냥 두기엔 유지비가 아까워 보내주기로 했다. 잠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고향집 주차장에서 쉬는 투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정든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마음처럼 서운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곧 떠날 투싼에게, 노장에게 고마웠다고 인사를 건네듯 나도 오늘 내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와서 수고 많았어.

잘 가. 잊지 않을게.

고마웠어.

덕분에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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