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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학원을 그만두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63

by 태화강고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초등학생 딸, 예비 중학생 아들과 함께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두 달을 어떻게 보낼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번 방학만큼은 이전보다 잘 보내고 싶었다. 방학이면 엄마의 역할이 더욱 커진다. 삼시세끼 챙기는 요리사와 학습관리를 해야 하는 매니저가 돼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영어코칭하는 치어리더가 되기로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마치 우리 속담인 듯 익숙하다. 2014년, 켄 블렌차드의 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원제가 "whale done : the power of positive relationships"이다. 조련사가 고래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고 인간관계에도 적용하면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하에 쓴 책이라고 한다. 칭찬의 힘을 강조한다. 칭찬 열풍이 불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말뿐인 칭찬이 아닌 진심이 담긴,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조언한다. 칭찬에 인색한 가정에서 자란 나와 남편은 아이들에게 칭찬 샤워를 쏟아부어 기르지 않았다. 적당한 칭찬은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칭찬이 넘치지 않게 그러나 부족하지도 않게 노련하게 상황을 살피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즐기는 공부를 하는 방학을 보낼 수 있기를 혼자 속으로 바라본다.


무던한 아들보다는 딸 옆에서 활발한 치어리더의 옷을 입는다. 딸은 나와 달리 감정표현과 스킨십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라 칭찬에 약하다. 유치원생처럼 매번 반응해 주길 바라서 종종 칭찬에 인색하다며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정도이다.


이런 딸의 영어학원을 끊었다. 학원에 다닌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실력향상은커녕 재미조차 붙이지 못했다. 숙제도 반 정도만 하고, 단어 외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이와 맞지 않는 고난도 중학교 수준의 단어를 외우는 것을 볼 때마다 외우는 아이도 보는 나도 힘들어 학원에 문의를 해 봤지만, 괜찮다고 밀어붙이는 통에 지금까지 꾸역꾸역 끌려갔다. 방학이 되자 더 이상 이렇게 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큰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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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동안 만이라도 학원을 끊고 집에서 기초부터 잡아 보기로 했다. 코로나 19 동안에 집에서 영어를 1년 반 정도 했다. 엄마표 영어로 초반에는 이끄는 데로 잘 따라왔지만, 1년이 지나자 계획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엄마랑 공부하는 게 재미가 없다고, 친구들이 있는 학원에 가고 싶다 했다. 그때의 아쉬움을 이번 기회에 만회하고 싶었다. 내 아이의 속도에 맞춰주고 싶었다. 명색이 엄마가 영문학과 출신인데, 초등영어쯤은 봐줄 수 있다고 아이를 설득했다. 엄마가 선생님이 되어 지도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 책에서 본 것처럼, 엄마가 티칭이 아니라 코칭을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학원비 지출이 많은 상황에서 관성대로 불만족스러운 딸의 영어학원비를 지출하고 싶지 않았다. 내 손으로 코칭해서 그 돈을 아끼기로 했다.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는데 학원비를 아껴 집에서 아이에 맞춰 가르치면 일거양득이라 의미 있을 거라 스스로를 격려했다.


첫 수업은 만족스러웠다. 역시나 칭찬하고, 격려하며, 아이와 속도를 맞췄다. 하루 2시간 분량의 계획표를 같이 짰다. 초등영어 800 단어를 한 달 동안 정리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중등 고난도 단어를 외우던 딸은 중등기초 단어장이 너무 쉽다며 자신만만했다. 뜻을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급 단어를 보다 갑자기 쉬운 단어를 보니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목소리도 커졌다. 그동안 영어학원에서 해 온 공부량이 있으니 그런 거라 살짝 띄워주면서 부족한 기초를 다지기만 하면 된다고 격려해 줬다. 연필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책에 단어를 적고 헷갈리던 단어를 말끔하게 외웠다. 외운 단어 테스트를 한 뒤 하트를 5개 그려줬다. 본인이 느끼기에 리스닝 실력이 부족하니 리스닝을 보충해 달라는 주문도 했다. 내 손에 질질 끌려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서서 공부할 것을 이야기해 주니 내 마음은 설레고 벅찼다. '드디어 내가 영어를 도와줄 수 있는 날이 왔구나!' 첫날 하루가 아닌 매일매일 잘하고 싶다는 말로 딸은 만족스럽게 공부를 마쳤다.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가 내 속에서 딸에게로 전해진 듯했다.


가내수공업을 하듯, 영어학원이 아닌 집에서 딸의 영어를 잡아 주고 싶다. 더 이상 영어가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기를 바란다. 부모로서 항상 치어리더의 역할이 주어지지만, 올 방학을 계기로 긍정의 힘을, 칭찬의 힘을 전파하는 확실한 치어리더가 되고 싶다. 그 역할을 완주하기 위해 스스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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