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64
요새 초등학생은 방학숙제가 없다. 우리 집 아이들의 방학식 안내문을 보면, 특별한 게 없다. 공통과제라고 적혀 있지만, 강제적이거나 정량적 평가를 할 대상이 아니다.
공통과제 : 1인 1 운동 꾸준히 하기, 좋은 책 많이 읽기
알아서 잘 지내다 오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요새 아이들은 학교 숙제가 아니라 오히려 학원숙제로 힘들어한다. 방학이면 특강으로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엄마는 경제적 능력과 기준에 따라 아이들을 먹이고 학원 보내고 가끔 여행 같은 체험활동을 하는 방학숙제를 만난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나도 모르게 "나 때는..." 이 말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국민학교시절, 방학숙제는 부담이었다. 대표적인 탐구생활과 일기 쓰기. 탐구생활은 한국교육개발원이 개발, 1979년 여름방학부터 배포를 시작해 약 20여 년간 초등학생용 방학과제물로 사용되었다. 점차 방학숙제 자율화가 확대되면서 지금은 사라졌다. 매일 꼬박꼬박 해야 개학식 전날에 몰아서 하는 고통이 없었다. 맘 편히 방학을 보내지 못했다. 관찰일기, 그림 그리기, 글짓기, 독후감, 만들기까지 다양한 숙제가 주어졌기에 개학날이면 완성한 숙제 보따리를 뿌듯한 마음으로 챙겨갔다. 숙제임무를 완수하는데 엄마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중요했다.
가방끈이 짧았던 우리 엄마는 학교 숙제를 도와줄 수 없었다. 항상 많이 배우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기면서 미안해하셨다. 방학숙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를 따라 길 건너 외사촌 오빠네 집으로 숙제를 들고 갔다. 당시 연세대와 성균관대에 다니던 사촌 오빠들이 집에 있을 때면 모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초등학생인 나는 대학생 오빠에게 눈치를 보면서 숙제를 마쳤다. 엄마도 보답으로 매번 과일 같은 먹을거리를 사다 주셨다. 과외 같은, 그러나 남이 아닌 친척에게 눈치 보며 비굴하게 숙제를 하던 그날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는 조카들에게 부탁하며 매번 우리 숙제를 해결해야 했다. 엄마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생활을 잘 마쳤다. 엄마는 사촌오빠들처럼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꼭 무시당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 어렸지만, 엄마의 못 배운 한을 내가 풀어야 할 책임감도 느꼈다.
그런데, 나라도 엄마처럼 했을까? 내 것을 내주고 자식들을 채워주고 싶은 게 부모마음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엄마만큼은 할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노력했을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영어를 가르쳐주는 것을 무척이나 대견하고 뿌듯해하신다. 본인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늘 안타깝고 미안했던 숙제라는 높은 벽을, 딸인 내가 타인의 도움 없이 당당하게 해 내는 것이 자랑스럽다 하셨다.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내주는 숙제 대신 자율적인, 개인 맞춤형 숙제를 엄마가 아이와 함께 주도적으로 찾아서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방학 동안 엄마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예전 우리 엄마들의 것과는 다르다. 자식이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은 변함없을지라도 기대와 지원은 30여 년 전 국민학생 때보다 지금 초등학생에게 폭포수처럼 쏟아붓고 있다. 아이들도, 엄마도 방학이어도 온전한 쉼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