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66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말을 꺼냈다.
"맘카페 보니 엄마들이 아이들 도시락을 싸서 학원 보내나 봐."
"엄마는 힘들어도, 건강과 식비를 생각하면 도시락이 답이겠지."
그렇게 도시락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학교 급식 덕분에 20세기를 살았던 엄마들과 달리 21세기 엄마들은 도시락 숙제에서 해방되어 살아가는 듯하다. 현재 모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식이 실시된다. 엄마로 살아가는 나도 지금껏 제대로 된 도시락을 싸본 적이 없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소풍 간다고 1년에 한 번 정도 김밥을 싸 보낸 게 전부이다.
초등학교가 1998년, 고등학교가 2000년, 중학교가 2002년에 전면 급식이 도입되었다. 남편은 급식의 혜택 없이 고등학교 때 도시락을 두 개씩 가지고 다녔고, 중간에 배고프면 매점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고 했다. 내 경우엔 외고에 다닌 덕분에 점심은 도시락, 저녁은 야간자율학습 전에 급식으로 먹었다.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은 엄마의 도시락반찬을 기억한다. 보온도시락통에 항상 가시발린 생선이나 불고기 또는 장조림이 들어 있었다. 따뜻한 미역국이나 된장국에 나물, 그리고 과일까지 선물세트처럼 이것저것 듬뿍 챙겨준 엄마의 정성을 딸인 나뿐만 아니라 함께 도시락을 먹었던 친구들도 기억할 정도이다. 엄마는 한 번도 도시락 싸기 힘들다, 귀찮다는 말씀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속으로는 힘든 시간이 물론 있었겠지만, 겉으로는 불평 없이 그저 묵묵히 뒷바라지해 주셨다. 그 시대 엄마들은 보통 그랬을 것 같다. 대안이 없으니까, 엄마가 공부하는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중요한 먹거리요, 사랑이었으니까.
시대가 많이 변했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하교 후 곧장 학원으로 간다. 집 근처 고등학교 하교 시간 때에 학생들을 보면 목적지가 한 곳이다. 양치기도 양몰이견도 없지만 양몰이하듯 우르르 학원가로 향한다. 저녁시간도 없이 학원에서 4-5시간씩 수업을 듣는 게 일상이 된 듯하다. 방학이면 거의 종일 학원에 살다시피 해서 점심 저녁 두 끼를 해결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학원 근처 분식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라면을 간편하게 편의점에서 먹으며 끼니를 때우는 게 다반사라 했다. 지인의 아이들도 그렇게 매일매일 보내고 있었다. 학원비도 비싸지만 추가로 드는 식비도 어느덧 무시할 수 없는 고정지출이 되었다고 했다. 돈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어릴 적부터 부모가 유기농으로 애지중지 키워낸 아이들의 몸은 학원 다니며 먹는 온갖 인스턴트식품과 고당 음료에 망가지고 있다. 그나마 학원에서 빈 강의실을 개방해 주면 도시락을 먹기도 한다. 학원밖에서 사 먹을 시간이 부족해, 또는 학원과 학원사이의 짧은 이동시간 중에 아이들은 엄마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학교가 아닌 학원수업을 위해 도시락을 싸는 시대가 되었다. 도시락 전문점에서 주문해 주는 엄마, 집에서 싸주는 엄마. 어떤 방법으로든 공부하는 자식들의 끼니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변함없다. 학생들에게 도시락의 쓰임과 의미는 여전히 존재하는 듯하다. 앞으로 다가올 내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도시락 싸줄 수 있겠어?" 남편이 다시 묻는다.
"그럼, 힘들고 귀찮아도, 원하면 기꺼이 싸 줄 수 있지. 그래도 엄마가 해 준 밥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지 않을까? 식품 첨가물이 덜 들어간 게 어딘데?"
우리 엄마와 달리 도시락을 싸면 대놓고 투덜댈 것이다. 힘들다고, 반찬으로 쌀 게 없고 한정된 반찬이 돌고 돈다고. 그래도 엄마니까, 할 것 같다. 그리고 학원비만큼이나 무서운 학원가 식비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고물가 시대가 갑자기 원하는 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년이 다가오는 남편의 월급이 배로 오르지 않을 것이다.
골골대는 내게 돈이 하루아침에 굴러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남편이 한마디 더 꺼낸다. 나도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