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 덕분에 과거 현재 미래를 사는 사람이다.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꿈꾼다
1886년 이화학당 교복에서 시작, 1960-70년대 검은색으로 획일화된 교복을 거쳐 1980년대는 교복 자율화시대였다. 1990년대 펑퍼짐한 교복의 시대에 여중여고를 다녔다. 중학교 교복은 튀는 팥죽색에 펑퍼짐한 항아리치마, 팥죽색 재킷으로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당시엔 놀던 친구들만 긴치마의 허리를 접어 무릎 위로 짧게 입고 다녔다. 여름 하복은 통기성이 약해 더웠다. 고등학교 교복은 회색으로 무난한 편이었으나 겨울 코트까지 맞춰야 해서 80만 원 안팎의 비용이 들었다. 교복 하면 연상되는 학창 시절의 일이 술술 나올 정도로 둘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외모와 옷에 민감한 청소년들이 옷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덕에 학생일 때도 부모가 된 지금도 난 교복을 좋아한다. 2000년대 들어서 학교별 다양한 디자인으로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언제까지 학생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상징하는 옷으로 남게 될지 궁금하다.
며칠 전 아들의 중학교 교복을 구입했다. 예상했던 중학교 배정통지서를 받고 하나하나 준비를 시작했다. 네이버 예약을 하고 시간 맞춰 아들, 딸과 함께 방문했다. 지하에 위치한 학생복 전문점. 북적북적 좁은 공간에서 순서를 기다린 아들은 허리둘레를 재고 바지하나를 받아 들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고무줄 트레이닝바지만 입다가 훅과 지퍼 달린 바지를 입으니 본인도 보는 나도 어색했다. 입고 간 면티 위에 조끼를 입고 마지막 재킷까지 입으니 완성된 교복룩이 나왔다. 운동으로 다부진 몸이라 어깨가 넓어 사이즈 맞추기가 어려웠다. 작은 옷보단 크는 아이이니 그냥 큰 치수로 선택했다. 매일 입는 재킷이 아닌 행사 때만 입는다고 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아빠 양복 재킷을 얻어 입은 느낌이 들자 웃음이 나왔다. 교복을 멋스럽게 입고 연기하는 꽃미남, 꽃미녀 배우들처럼 핏감이 살아있는 교복이 아니었다. 몸만 컸지 아직 아이였다. 몸에 교복을 어설프게 걸쳐 놓았다.
요새 학생들은 교복대신 체육복을 입고 생활한다 해서 체육복 한벌에 바지를 추가 구입했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줄이 몇 가닥 있는 디자인을 보고 아디다스 짝퉁 같다며 또 한 번 웃었다. 새로운 옷을 받아 들고 우리는 계속 웃었다. 사시사철 교복만 입던 예전과 달리 편하게 체육복을 입고 생활하는 편리성과 실용성에 감탄했다. 오빠보다는 체크무늬 빨간 치마에 마음을 빼앗긴 딸은 그 옷을 입는 학교를 궁금해했다. 오빠가 가는 중학교라는 말에 자기도 그 학교에 가겠다고 바로 선언했다. 계산대에 옷을 들고 섰다. 교복 (재킷, 조끼, 셔츠, 바지, 넥타이)과 체육복 한 벌, 그리고 추가로 구입한 바지가 커다란 에코백을 가득 채웠다. 옷은 무거웠지만, 다행히 비용은 가벼웠다. 경기도에서 2019년부터 중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무상교복지원 사업(1인당 30만 원 이내 현물 지급)을 통해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준 덕분이다. 올해부터는 지원 금액을 10만 원 인상함으로써 아들도 추가 구입한 체육복 바지비용만 결제했다.
경기도 중고교 신입생 무상체육복 지원 (경기)=2024학년도부터 중·고등학교 신입생들의 교복뿐만 아니라 체육복, 생활복을 무상 지원한다. 지원 금액은 1인당 30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한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은 남편 앞에서 교복을 다시 입어보았다. 흰 셔츠까지 갖춰 입었다. 셔츠를 입어본 기억이 없어서일까? 큰 손가락으로 작은 단추를 끼우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그저 웃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놀렸다. 진짜 몸만 컸지 익힐 것이 더 많은 아이였다. 그렇게 단추를 천천히 끼운 뒤 셔츠를 바지 속에 집어넣었다. 조끼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대망의 재킷을 걸쳤다.
옷 한 벌 갖춰 입는데도 시간이 걸리겠구나!
모든 게 시작이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겠어!
웃음과 설렘 가득한 아들의 첫 교복 착용식은 막을 내렸다. 부모로서 뿌듯하고 앞날이 기대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