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파도 될까요?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69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꼭 내게 일주일간 머물러간다.
내가 그리 만만한지...
난생처음 독감에 걸려 3일 반을 끙끙 아팠다.
코로나 2번 걸렸을 때처럼 식구들 중 유일하게 나만 걸렸다. 독감백신접종도 했는데... 할 말 이 없 다.
굳이 이유를 찾아낸다면 면역이 약하다는 말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듯.
면역에 중요한 충분한 잠이 부족해서 약해졌나?
남편이 인천으로 출근하면서 6시에 일어난다. 12시에 자니 6시간 수면이면 엄청 부족한 것도 아닌데 암 발병 전에 비해 약해진 체력 탓에 미라클 모닝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래도 너무한다.
아플 땐 곁에서 누가 살뜰하게 챙겨주기를 바란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다. 돌봄을 주는 사람이지만 돌봄의 대상이 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너무 아플 땐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부담스럽다. 아픈 몸을 이끌고 밥을 챙겨주고, 하루하루 쌓여가는 산더미 같은 빨래를 해야 하고, 머리카락이 눈에 거슬리는 집안 곳곳을 못 본 척 지나치지 못해 몸을 숙인다. 일 년에 한 번 정도이니 가족 중 누군가 나서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간단하게 하면 좋으련만, 내가 아프면 집안일은 올 스톱이다. 그게 나를 더 슬프게 할 때도 있다. 아이들이 크면 달라질까?
내 기억에 엄마도 아파서 누워 계셨던 적이 없던 거 같다. 언제 아팠을까? 나도 동생들도 아빠도 그저 아프다고 하면 아프구나 하고 지나쳤었나 보다. 각자 할 일만 할 뿐 엄마가 얼마나 아픈지 쉬어야 하는지 별생각 없이 살아서 나도 똑같이 당하나 싶기도 하다. 집안일은 가족 구성원모두가 분담해야 하는 건데,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엄마들은 본인의 업무라 여기고 분담의 "분" 자도 입밖에 내지 못한다. 엄마도 그랬고, 나도 그러고 있다. 세대가 바뀌어 고등교육을 받은 딸임에도 꾸역꾸역 집안일을 하느라 애쓴다. 밖에서 돈을 못 버니 집안일이라도 찍 소리 안 하고 해 내야 하는 걸까? 평상시에는 그렇다 쳐도 아플 때는 평상시 분담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무능함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져 내린다.
내가 아프면, 아이들과 엄마는 걱정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밥 걱정을 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돌봐줄 사람이 없어질까 봐 걱정한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시어머니는 남편과 아이들 걱정에 많이 우셨다. 혹시 내가 먼저 죽어 아들이 혼자남아 아이들 키우며 살게 될 까봐 걱정하셨고, 수술 후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게 내 인생의 숙제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엄마 또한 아이들 결혼시킬 때까지는 꼭 살아야 한다고, 본인도 나 없이는 못 산다고 하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 인생은 없고, 가족을 돌보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 같은 책임감이 나를 짓누른다. 사랑하니까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닌 돌보는 자로서 존재해야 하는 뜻으로 곡해할 때도 있다. 돌봄을 줄 수 있는 사람일 때 쓸모가 있다는 건 안다. 지금 내가 딱 그런 나이이니까. 아이를 키우고 연로하신 부모를 봉양하는 중년은 맞지만, 나도 돌봄을 받고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외쳐도 들리지 않을까?
몸을 추스르고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시작한다.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밥을 한다. 아이들을 챙기고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킨다. 또다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번엔 다짐한다. 아이들도 남편도 각자 할 일을 알려주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나 또한 아프면 만사 제치고 쉬는 것을 몸에 조금씩 익혀나가기로 했다. 아플땐 제대로 아플 것이다. 아픈 사람만 서럽다는 말을 이미 몸으로 겪어봤음에도 미련하게 사는 내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갈 것이다. 아프면 다 소용없다.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엄마 여러분, 아프면 쉬세요! 저도 쉬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