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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 함께 가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72

by 태화강고래

거실에 있는 너덜너덜 찢어진 축구공을 볼 때마다 "축구는 내 인생 최고의 취미이자, 특기요."라고 아들이 말하는 것 같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그러니까 5살쯤 직장에서 기념품으로 받아온 지름 20센티 정도 크기의 작은 사인볼이 있다. 가죽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축구공도 아니고, 선수들의 사인으로 장식된 볼이다. 한쪽 구석에 장식으로 놓여있던 볼이 아들이 8살이 되던 해, 거실용 축구공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아들은 처음으로 축구 세계에 입문했다. 같은 반 친구 15명과 반축구를 하면서 축구라는 스포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유치원 종일반과 태권도를 하며 내 퇴근 시간을 기다리던 아들은 다른 친구들처럼 유치원 때부터 축구를 하지 못했다. 처음엔 어설프고 잘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는 듯했다. 그런 아들이 1주일에 한번 있는 축구수업 외에 집안팎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당연히 집안에서도 공을 굴려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인볼은 아들과 한 몸이 되어 훈련에 돌입했다. 연습에 연습을 하더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어느덧 공격과 수비라는 포지션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9월에 열린 축구교실 대항전에서 아들반은 우승은 하지 못했다. 경기장을 쉼 없이 뛰어다닌 아들은 2골을 혼자 득점하고도 우승을 못하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쉬워했다. 승부에 대한 집착 없이 그저 뛰어다녔던 다른 친구들은 별 감흥 없이, 해맑은 8살의 미소를 보이며 포토존에 섰다. 아들은 진지함과 슬픔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그날을 기념했다. 축구를 향한 열정은 그렇게 단단해졌다.


대회 이후 축구 코치로부터 엘리트반 선발전이 있으니 한번 테스트를 받아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축구선수할 것도 아닌데, 뭐 하려 해"라는 의견과 "한번 도전해 보자. 실력이 어떤지나 보자"라는 의견사이에서 고민하다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예상치 못하게 아들은 테스트를 통과 후 엘리트반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 피라미드처럼 1등과 꼴찌가 있음을 아들 인생에서는 처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아들은 피지컬은 좋았지만, 축구의 기본기를 마스터한 상태가 아니라 누가 봐도 기본기에서 뒤쳐저 있었다. 관람석에서 지켜보는 엄마들의 시선을 느끼며 아이들은 저마다 애쓰고 또 애썼다. 추운 겨울 눈 내리는 밤에도 아이들은 야외 훈련을 받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시키지 않아도 저마다 꿈을 향해 가는 듯했다. 8살짜리 아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견하고 어른스러운 순간들이었다. 점점 기본기도 갖춰가며 누가 봐도 인정받을 만큼, 놀라우리 만큼 아들의 실력은 빨리 늘었다. 2월이 되어 이삿날이 다가오면서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축구에 재미를 붙인 아들이 울산으로 내려가게 되자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던 모습을 잊지 못할 정도다.


울산으로 온 김에, 축구를 그만두게 하자는 의견과 그래도 좀 더 시키자는 의견이 다시 불붙었다. 낯선 곳에 살면서 축구라도 해서 정을 붙이게 하자는데 뜻을 맞춰 울산 클럽을 몇 군데 알아보며 테스트를 보았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암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아들의 축구활동을 지원하기가 버거웠다. 아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연습장에 따라가고, 때로는 픽업도 해야 하는 엄마의 역할을 할 자신이 없어 남편과 나는 아들에게 또다시 죄인이 되었다.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축구를 향한 불꽃이 절정을 향해 타오르기 시작한 아들은 클럽에 가는 대신 스스로 길을 찾았다. 학교 운동장에서든, 아파트 공터에서든, 집안에서든, 축구공을 가지고 때로는 친구들과 때로는 홀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 내에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꽤 있어 자연스레 그들과 어울리는 듯했다. 우리가 사는 동이 바로 놀이터 앞이라 내려다볼 수 있었고 친구들이 모여들면 어느새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동갑내기 친구들, 메시 유니폼을 입은 아이와 손흥민 유니폼을 입은 아이와 어울려 연습을 했다. 자신의 축구공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연습을 했다. 집안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거실에서 조용히 해야 했음에도, 아무리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사인볼을 가지고 발재간을 부리며 축구 연습을 매일 했다. 다행스럽게도 45평 거실은 뻥 뚫린 고속도로처럼 공차기에 적합했고, 아래층 이웃도 말없이 넘어갔다. 공을 차지 않으면 입안이 아니라, 발에 가시가 돋을 듯이 멈추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감차와 드리블을 배우고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아들이 찬 공에 의도치 않게 나도 딸도 거실에 있다가 수없이 맞기도 했다. 맞을 때는 당황스럽고, 화나고, 짜증 나고 아팠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지나 아들은 6학년을 경기도로 돌아와서 마쳤다. 체육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친구들과 모여 축구로 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왔다. 졸업식에서는 "체육인상"이라는 특별상까지 받을 정도로 축구를 비롯한 체육을, 우리 부부의 자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한다. 반 대항전을 통해 전교생이 아들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알 정도로 축구라면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운동을 잘하니 아싸가 아닌 인싸가 된다고도 했다. 여전히 집에서는 커진 몸집에 발을 가만두지 않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공을 살살 굴린다. 공이 벗겨진 만큼 아들은 몸과 마음, 그리고 축구 실력이 성장했다. 공을 차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자,

"그냥 차요.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도 없어요."

이렇게 답한다. 내 해석으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공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고 기쁨을 누리고 슬픔을 날려 보냈을 텐데, 아들은 담담하게 말한다. 진짜 아들의 말처럼, 별생각 없을지도 모르지만, 지켜본 엄마로서는 아들의 성장에 버팀목이 되었던 축구와 그 축구에 대한 사랑을 지켜준 사인볼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왠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낡은 사인볼이 그렇게 느껴졌다. 어릴 적 축구를 배우며 아들은 노력과 성취의 중요성을 배웠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도전을 앞둔 아들에게 말한다.

"힘들 때마다 네가 엘리트반에서 축구를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봐. 너보다 앞선 친구들도 많았고, 너는 기본기도 부족했지. 그래도 꾸준히 배우고 연습해서 실력이 느는 것을 경험했잖아. 그렇게 너를 이끌던 성장 동력을 기억해."

오늘도 아들은 공부하다 거실로 나오면 공을 굴린다.







* 축구공을 소재로 브런치를 쓰는 제 옆에서 딸은 자기도 할 말이 많으니 쓰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두 살 터울의 남매가 티격태격 다투는 일이 일상이지만, 오빠의 공에 맞을 때마다 딸은 자신도 아팠지만,

공도 아팠을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딸의 관점에서 본 축구공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소개하니 같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축구공에게 쓰는 편지>

지은이 : 딸


축구공아.

고생이 많다.

나도 매일 오빠의 화풀이 대상으로서 그 마음을 알아.

나도 매일매일 오빠한테 놀림받고 어느 땐 맞기도 해.

오빠가 게임할 때나 걸어 다닐 때 매일 너로 나를 맞히거든.

매일 너를 밟고 차고 얼마나 힘드니?

핸드폰으로 찍어도 너의 멍들고 찢어진 모습이 너무 잘 나와서

그걸 보는 내가 슬프기도 해.

나는 너와 생김새는 다르지만 오빠에게 고통받는 건 똑같잖아.

너와 나 둘 다 가만히 있어도 오빠의 화풀이 대상인걸 어떡해.

엄마가 말려도 소용이 없는걸....

나도 너를 지키기 위해 말해보지만 오히려 나를 때리며

상관하지 말라그래.

2018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우리 같이 힘내보자!

(딸은 아들에게 매우 할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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