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71
주말 아침, 어김없이 엄마를 보러 요양병원에 간다. 병원건물 1층을 차지했던 동네마트가 떠난 텅 빈자리는 오늘도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그런데, 한쪽에 걸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GS25! 편의점이 들어오나 보다. 역시나 또 편의점이라니... 나도 모르게 실망스러웠다.
엄마가 이곳으로 옮긴 게 2017년 9월부터니까 올해 초까지 6년 반 동안 병원 1층 마트를 이용했다. 두 블록 건너에 이마트가 엄연히 건재했어도 주변 아파트를 끼고 있어 장사가 꽤 되는 편이라 생각했다. 이마트까지 가기 귀찮거나 한 두 가지 살 경우에 동네마트 이용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과일, 야채, 생선, 정육, 음료, 간식거리 등 웬만한 품목은 다 갖춰져 있었다. 캐셔 아주머니와 물건 정리하는 2-3명 직원까지 조용히 일하는 깔끔한 마트였다. 특히 병원에 거주하는 분들이 멀리 가지 않고도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어 좋았다. 엄마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간병사와 함께 고구마와 계란 같은 식료품을 주로 샀다. 울산에 거주하는 동안 엄마의 간식이 필요할 때면, 전화주문을 했다. 품목을 말하고, 계좌이체로 계산을 마치면 마트에서 병원으로 배달해 주었다. 1주일에 한 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기억했고, 아주머니도 내 목소리를 기억하시며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다.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엄마와 마트 곁에 있는 느낌이었다. 경기도로 돌아와서 그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고,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로 계산대를 지키고 계셨다. 고구마, 사과, 귤 같은 간식을 매주 샀다. 엄마 용돈으로 드릴 만 원짜리 지폐를 준비해 오지 못할 때에는 서슴없이 오만 원을 만 원짜리로 교환해 주셨다. 그렇게 보낸 시간들을 뒤로하고, 문 닫기 전 마트에 갔을 때 아주머니는 안 계셨다. 못 보던 직원이 계산을 하며 폐업을 한다는 말만 전했다. 아주머니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못 한 게 지금도 아쉽다.
마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입점을 준비 중이라니. 지난봄부터 요양병원 근처 곳곳에 쉬지 않고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어김없이 편의점들이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한 블록 지날 때마다 GS 25 아니면 CU, 어쩌다가 세븐일레븐이 있다. 신축 건물들 사이에서 엄마 병원건물의 마트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고 폐업을 선언했을까? 그저 자고 나면 자영업의 탄생과 몰락이 일상이 된 세상인데, 이곳 마트의 운명이 달리 느껴졌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도 예외는 아니다. 앞에 GS슈퍼가 있고, 옆 건물엔 CU편의점이, 또 그 옆엔 GS 25 편의점이 서 있다. 2023년 7월 기준, 편의점 점포수 1위는 CU, 매출 1위는 GS 25라고 한다. CU가 점포수를 늘리면서 공격적으로 매출 1위까지도 노리는 중이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CU가 점포수를 늘리면서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CU는 2020년 점포수 1만 4923개로 GS25에 235개 앞서더니 2021년 1만 5855개, 2022년 1만 6787개 등 계속해서 늘리고 있다. GS25의 지난해 말 기준 점포수는 1만 6448개로 CU와 339개 차이가 난다.
(아시아 투데이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30723010012869)
그런 거 같다. 반경 200m 내에 편의점의 양대산맥인 CU와 GS25가 우리를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일상 속으로 파고든 편의점은 여행지 같은 낯선 곳이든, 동네 같은 익숙한 곳이든, 이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동네 구멍가게가 되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작은 가게대신 편의점이 들어서는 추세가 된 지 오래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가 어린이집과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있었다. 둘이 지나가기도 좁은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은 쭈그려 앉아 사탕과 젤리를 고르느라 나름 고심했던 추억의 장소였다. 어느 날 아저씨의 건강악화로 문을 닫았고, 이사 후 그 앞을 지나가다 GS편의점으로 바뀐 것을 보고 놀랐었다. 시댁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도 CU가 들어섰다. 그렇게 주변 아파트 단지 내의 가게들이 하나둘씩 양 대 편의점 수 확대에 일조하고 있었다. 땅따먹기 시합이 언제 끝날지, 그 경쟁의 끝은 어떤 모습일지 미리부터 걱정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운영비가 올라 편의점의 수익이 위태롭자 요새는 점차 편의점도 무인점포나 특정시간대만 무인으로 운영하는 하이브리드형 점포로 운영 중이라고 한다. CU는 400곳, GS25는 820여 곳을 운영 중이라고 하니 편의점도 변신 중인 건 확실하다.
규격화된 거주 형태인 아파트와 신축 건물들의 부품이 된 편의점이 현대인이 편리한 생활을 하게 끔 도움을 주는 건 확실하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코로나 시국 이후 식료품 판매도 늘고 있으니 어디를 봐도 편의점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유치원생부터 성인까지 전 국민이 수시로 들리는 구멍가게이니 그 존재 의미가 큰 것도 사실이다. 안타까운 건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넘치는 건 부족한 건만 못하다. 정도를 지키면서 빈틈을 남기며 다른 업종도 생존할 환경을 먼저 만들어주는 배려는 영영 사라진 듯, 경쟁만이 살 길인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끔 슬프다. 공존과 상생을 입에 올리면 루저가 되는 걸까? 다양한 풍경 대신 레고블록처럼 똑같이 맞춘 편의점 블록이 눈에 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