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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추억을 그리는 딸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74

by 태화강고래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통화로 하루를 시작했다. 밤새 별일 없었느냐고 문안인사를 한다. 지난밤 돌아가신 아빠를 잠깐이라도 만나면, 엄마는 혼자 간 아빠를 원망한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그때 죽었어야 했다고, 그때 안 죽고 살아 자식들 고생시킨다고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노년을 한탄한다.


내가 암에 걸리기 전, 이런 이야기를 엄마와 주고받은 적이 있다. 암환자가 나을까, 뇌출혈로 뇌병변환자가 나을까? 둘 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와는 상관없는 병으로 피하고 싶은 질병이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둘 중 단 0.01퍼센트라도 나은 게 뭘까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의학적 지식이나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야기하니 케이스 바이 케이스일 것이다. 암환자는 종류와 병기에 따라,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고통의 수준이 다를 것이며, 뇌출혈로 인한 후유증의 스펙트럼도 넓을 것이다. 당시에는 오직 이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암환자는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만약 말기암 환자라면 시한부 인생을 살터이니 남은 평생을 편마비 장애인으로 타인에게 의지하며 기약 없이 사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아프고 세상을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재활병원에서 물리치료 외에 특별한 치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5년이 경과하니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물리치료를 받는 게 어려워지게 되자 요양병원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다 딸이 암환자로 살게 되자 재발과 전이의 걱정을 나보다 더 많이 하며 딸이 죽을까 봐 걱정이 마르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암과 뇌출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아빠가 꿈에 나타나지 않으면 죽음에 대해 대놓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회고록 부문에서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CRYING IN H MART (H마트에서 울다)"를 읽고 있다. 작년에 샀는데 책장에 전시만 해두다가 펴 들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정미 자우너 (Michelle Chongmi Zauner)라는 인디 팝 밴드 ‘재패니즈 브랙퍼스트’의 리드 보컬로 가수이자 기타리스트가 썼다.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의 딸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성장하나 엄마의 말기암 선고와 죽음을 곁에서 경험한 후 엄마와의 추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국 음식과 문화를 통해 작가가 기억하는 엄마의 사랑과 헌신이 나에게 전해지며 나 또한 엄마의 음식을 추억했다.


"Food was how my mother expressed her love (4)."

우리 엄마도 그랬다. 배운 건 많지 않아 늘 부족하다고 자식들에게 미안해했지만, 아빠에게 받는 생활비의 대부분을 자식들 먹거리에 썼다. 대형마트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근처 재례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이며 채소를 바리바리 양손 가득 팔이 아프도록 들고 와서는 매일 요리사로 변했다. 병어조림이나 고등어조림 같은 얼큰하고 칼칼한 생선요리, 꽃게철이면 꽃게탕을 한 솥 가득 끓여 아빠와 내 식욕을 돋우셨다. 생김치를 좋아하는 아빠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은 김치를 담그셨던 것 같다. 매일매일 집밥에 진심이셨던 엄마의 손맛이 멈춘 지 어느덧 14년이 되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본인이 손수 만들었던 음식들을 입에 올리며 지난 추억을 가끔씩 이야기한다. 그래도 추억이 있으니 다행이다. 더 다행인 건, 우리 집에서 어설픈 내 집밥을 대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은, 보고 싶으면 볼 수 있는, 곁에 계시니 말이다.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환자들은 때론 기다리기도 하고, 보통의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사는 게 힘든 엄마가 긴긴 하루 중에 잠깐이라도, 살아서 좋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길 바라는 나는,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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