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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수기 안 사요?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80

by 태화강고래

주전자에 물을 끓일 때마다 팔팔 끓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엄마는 왜 정수기 안 사요? 여름에는 찬물과 얼음이 나와서 진짜 좋은데."


여름만 되면, 딸은 정수기를 입에 올린다. 주방 한 자리를 차지하며 흰색으로 주방을 환하게 비추는 전자 물통 없이 살고 있다. 지금껏 안 샀다. 앞으로도 안 살 거 같다. 그래서 매일 물을 끓인다. 똑같은 주전자를 8년째 쓰고 있다. 때로는 귀찮다. 주전자를 닦고 수돗물을 넣어 20여분을 끓이는 단순한 행위임에도.


아이들 친구집에 가보면, 깔끔한 정수기가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기호에 맞춰 냉수와 온수를 알아서 척척 내려준다. 신기하기도 하고, 멋스럽기까지 해서 모던한 주방의 필수가전으로 대접받고 있다. 냉장고, 식기 세척기, 인덕션은 있는데, 정수기는 없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딸에게도, 나에게도 내가 줄 수 있는 답은,


"난, 끓인 물을 좋아해."이다.


이것도, 가정환경의 영향인가?

어린 시절에는 정수기가 없었다. 국내 정수기 30년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청호 정수기가 1993년 첫발을 내디뎠다. 엄마는 눈에 좋다는 결명자차뿐만 아니라 구기자차와 보리차까지 끓여 주셨다. 물은 끓여마신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시댁에서는 옥수수차를 마신다. 그곳에서도 차를 넣어 끓인 게 물이었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루이보스 보리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그게 물이려니 하고 자랐다.


3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부터 언제든지 물이 나오는 "정수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아이들의 물병에 든 보리차를 보고 깜짝 놀란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물은 색깔이 없는데. 물병에 든 갈색은 뭐야?"

"보리차야. 물."


갈색의 액체를 물이라고 하는 자기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정수기를 사용하는 집에서 자란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정수기 물이 물이었던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보리차도 물이고, 정수기 물도 물이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냉장고에 넣은 보리차를 주고, 가끔 아이스티 같은 액상을 타서 마시고 싶다면 마트에서 생수를 사서 준다. 그렇게 냉수를 공급하며 살고 있다.


나는 커피만큼 차를 좋아한다. 캐모마일, 페퍼민트 같은 허브차도 좋고, 과일차도 오케이다. 하루에 10잔 정도 물을 마시는 나는 그냥 밍밍한 물 대신, 차를 넣어 끓인 물을 선호한다. 무엇보다, 필터가 아무리 걸러준다 해도 끓인 게 최고라고 믿는 구식이다. 항암 할 때, 날로 먹는 회나 끓이지 않는 물은 되도록이면 피하라는 조언을 들은 후부터 더욱 확고해졌다. 면역이 약하니 물은 끓여 먹는 것으로 정했다.


루이보스 보리차 말고도 결명자도 끓여 마신다. 머그잔에 따라 적당히 식힌 따뜻한 물을 마시면 속이 편해진다. 다음에는 구기자에 도전할 계획이다. 딸은 독립하면 정수기를 들여놓겠지. 난 그때도 물을 끓여 먹을 거니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옛 생각을 할 딸의 모습이 그려진다.




눈을 밝게 해 준다는 뜻의 결명자는,

눈의 충혈, 야맹증, 혈압 강하, 이뇨, 통변, 자궁수축작용과 피부진균 억제, 콜레스테롤 강하 등의 기능이 있다.

구기자는,

피로해소 촉진, 지방간 예방 (구기자의 베타인 성분은 항지방간 요인이다.), 혈압조절 (비타민C, 루틴 등이 있어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저혈압에 좋은 영향을 준다.) 기능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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