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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83

by 태화강고래

곧 설이다.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저희 설날 아침에 갈게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사 갈까요?"

"다 준비해 놨어. 떡국 끓이고, 뭇국 끓여놨으니 됐지. 매번 똑같이 하잖아."


어머니의 밥상은 변함없다. 10년 넘게 똑같다. 그저 세월이 흘러 체력만 떨어져 움직임이 둔해지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시는 것 말고는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은 변함없다. 올해도 어머니가 준비해 놓으신 음식을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먹으러 갈 것이다.




혈연관계인 부모 자식 간에도 닮고 닮지 않은 부분이 자라면서 확연히 드러난다. 내 자식도 키워보니 그렇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어디가 닮을 수 있을까? 결혼 전, 청첩장을 찍으면서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내 성씨가 같다는 것을. 김이박도 아닌 서씨다. 부여 서씨인 시어머니와 이천 서씨인 나. 부자가 서씨 여성과 결혼을 했다. 우연히 같은 성씨라는 점에서 알 수 없는 친밀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느라 음식장만과 상차림으로 온 힘을 쏟았던 엄마와 달리, 시댁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는다는 것 말고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결혼 후 몇 해 동안은 며느리를 들였다고, 약간 신경을 쓰시는 눈치였다. 동태전과 산적꼬치, 갈비찜을 상에 올리셨다. 가끔 생선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생선도 구우셨다. 며느리가 익숙해지자 명절음식이 간소해졌다. 떡국, 동태 전, 불고기를 준비하신다. 대신 소고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국에 가득 넣어서 끓이신다. 솜씨가 없으니 좋은 재료를 듬뿍 넣으면 맛이 살 거 같다고 생각하시면서.


명절이 아닐 때에도 불고기와 뭇국 또는 미역국을 기본으로 상을 차리신다. 매번, 한 상 차리고서도,

"똑같은 것 밖에 할 줄 몰라. 내가 음식을 잘 못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는 어머니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아시잖아요. 해 주는 밥, 특히 엄마가 해 주는 밥 먹는 게 좋잖아요."

"내가 못하니, 음식 가지고 타박할 수도 없어"


본인의 음식 솜씨가 못하다는 것을 아시고 못하는 나를 탓하지 않으신다. 나도 잘 못한다. 음식을 잘하는 전라도 출신 엄마의 딸이지만, 주부 경력 14년 차가 부끄러울 정도로 먹고 살 정도만 한다. 나와 달리, 동생은 엄마의 손맛을 닮았는지 김치 담그기를 비롯해 이것저것 기꺼이 해 먹는다. 그나마, 아프고 나서 먹는 것에 신경을 쓰고 살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블로그와 요리책에서 추천하는 레시피를 한 두 번 따라 해 보다가는 곧 내 방식대로 체화시켜 만들고 엄마의 음식을 기억해 비슷하게 흉내 내는 정도다. 단, 버섯과 양파, 마늘은 잊지 않고 불고기와 생선조림에 꼭 넣는다. 남편과 아이들은 고기만 먹고, 나머지 채소는 내가 먹는다.


음식솜씨 없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게 바로 우리 고부의 닮은 점이다. 남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엄마는 요리를 못하니 부인은 잘하는 사람으로 골라 맛있는 거 먹고살라고 예전에 엄마가 말씀하셨지."

"미안하네. 요리 솜씨 없는 와이프 만나서... 하하하"

이게 남편의 운명인가? 어머니의 음식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덕분에 내 음식에 큰 타박을 하지 않는다. 다양하게 먹고 자라지 않아 반찬을 거의 먹지 않는 초등학생 입맛의 소유자가 되었다. 불고기, 돼지고기볶음, 닭갈비, 생선구이, 샤브샤브 같은 메인디시 하나면 한 끼를 해결한다. 충분한 영양소 섭취가 안될 것을 염려할 때도 있지만, 반찬이 없을 땐 김과 계란만 있어도 밥을 먹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가끔 생각한다. 요리사 뺨치는 실력을 갖춘 시어머니를 만났다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가 좀 고달폈을 거 같다고. 기대를 낮추고 서로를 이해하니 사는 게 그리 힘들지 않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해 가족의 식사를 내어 놓는 어머니처럼, 내가 차리는 상도 비슷하다. 겉보기에는 별 볼일 없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뿌려진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을 먹인다. 그래서 본인의 상차림을 부끄러워하는 어머니의 고정된 메뉴도 감사하게 먹을 수 있다. 70세가 넘어서까지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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