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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그날?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84

by 태화강고래

설레는 그날이라는 마트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설을 하루 앞두고 집 근처 마트에는 음식 장만을 위해 쇼핑하는 주부들로 가득했다. 고물가에 과일도 채소도 마음껏 살 수 없지만, 나도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나온 주부들 중 하나였다.


설이 설렐까?

1년에 두 번, 명절 때마다 빠지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아직 건재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명절 몇 주 전부터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고 친척을 맞이하시던 엄마도 그때는 다가오는 명절이 부담스러웠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명절증후군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장기의 귀향 과정, 가사노동 등의 신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는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족제도가 사라지고 핵가족의 개인주의 문화가 정착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러움, 위장장애, 소화불량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과 피로, 우울, 호흡곤란 등의 정신적 증상이 있다. 명절증후군을 겪는 대상은 대부분 주부였지만, 최근에는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명절증후군 (매일경제, 매경닷컴)


세월이, 아니 상황이 엄마를 변화시켰다. 이제 엄마에게 명절은 설레는, 몇 안 되는 연중행사가 된 지 10년이 넘었다. 요양병원에서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통의 일상을 보내는 시간이 되었다. 자식들 곁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웃을 수 있는, 흐르는 시간이 아쉽고 아쉽다는 말을 하는 평범한 할머니의 옷을 입는 특별한 날이다.


일 년에 두 번. 추석과 설에 외박을 나오신다.

부끄럽지만, 자식이 셋이나 있으나 가정이 있는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서로 불편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명절이 공식적인 외박 타임이다. 가끔 생신이나 아빠 기일에 특별 외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부족한 자식들 때문에 외롭게 사신다. 장녀인 우리 집은 사위에게 미안해서, 둘째는 10년 동안 미국서 살다와서 아예 머릿속에 그런 생각조차 없어서, 아들집은 며느리에게 미안해서. 코로나19 전에는 남동생과 손발을 맞춰 좁은 집이었지만, 엄마집이 있어 맘 편히 2박 3일 동안 몸과 마음을 다해 엄마를 보필했다. 결혼 전처럼, 친정집에 가있는 딸처럼, 한 방에 앉아 TV를 보며 웃고 먹고 자면 어느새 명절이 지나고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엄마는 병원으로, 나는 데리러 온 남편과 함께 시댁으로 갔다. 빈집을 처분하고 나서는 결국 아들집으로 가게 되어 작년 추석부터 남동생집에서 명절을 지냈다.


그런데, 이번 설에는 외박 없이 외출만 하기로 결정했다. 올케가 몸이 안 좋아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엄마는 반나절 외출임에도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명절을 앞두고 목욕을 했던 옛날 어른들처럼, 정해진 목욕타임 외에 추가로 한번 더 했다고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 깨끗하게 씻고 자식들을 만나고 싶어 자신만의 설 맞을 준비를 하셨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밤잠을 설치며 아침 해가 빨리 뜨길 바라고 있을 게 뻔히 그려진다. 나도 1년 만에 우리 집 식탁에서 엄마와 함께 굴떡국과 불고기를 먹을 소중한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엄마의 딸 역할을 하기에 지금껏 명절증후군 없이 잘 지내고 있고, 여러 가지 배려해 주시는 시부모님께 항상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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